매일신문

안동 사기도박 내막

'아무리 사기도박이지만 어떻게 20억원을 잃을 수 있을까?'. 23일 '폭력조직 낀 사기도박단 13명 검거'라는 내용의 본지 보도〈23일자 30면〉에 안동이 떠들썩하다.

내막은 이렇다.

전문도박꾼 정모(43)씨와 박모(38)씨는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한 사이. 이들은 사업관계로 알고 지내던 피해자 이모(43)씨가 재산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도박판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돈을 따면 반씩 나눠갖기로 한 이들은 2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다.

도박판에 들러리를 설 속칭 '일꾼'들과 사기도박 전문가인 '타짜'를 확보하고 특정 표시를 한 '목카드'를 만들어 패 읽는 연습을 했다.

2001년 9월 실전에 들어가 피해자 이씨를 자신들이 확보한 '일꾼'과 '타짜'와 함께 속칭 '바둑이'도박판을 벌이게 했다.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꾼들은 모두 한편. 판이 돌아가다 '타짜'가 패를 나눠줄 차례가 되면 이른바 '작업'이 시작된다.

이씨에게 아주 좋은 패를 주지만 자기편에게는 더 좋은 패를 나눠줘서 단번에 이씨를 '올인'시켜 버린다.

이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또 속임수는 전체 판 중 결정적일 때 한두번 정도여서 매번 돈을 잃으면서도 운 타령만 했던 것. 이씨는 본전 생각에 판이 벌어질 때마다 큰 돈을 걸었다.

한판 베팅에 2억8천만원이 걸릴 정도로 판이 커졌고 이씨가 1년간 잃은 돈은 십수억원에 달했다.

딴 돈을 정씨가 관리하며 박씨와 일꾼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정씨는 박씨와의 약속을 어기고 수입 대부분을 챙겼고 이를 알아차린 박씨는 정씨와 결별 후 별도의 사기도박판을 만들어 이씨의 돈을 털어갔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일꾼'의 입 때문. 정씨와 박씨가 엄청난 돈을 따고도 자신들에게는 고작 몇백만원을 수고비로 준데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그만 소문이 나버린 것.

이를 안 지역의 조직폭력배 모씨는 이씨에게는 잃은 돈을 찾아주겠다며, 정씨와 박씨에게는 사기도박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비로소 사기도박에 당한 것을 알았고, 함께 도박을 했던 '일꾼' 몇 명을 회유, 사기도박을 했다는 증언을 녹취해 수사를 요청했다.

전문 사기도박꾼, 얼빠진 피해자, 약점 잡은 조직폭력배가 합작한 사건. 하지만 안동에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문다는데서 심각성은 더하다.

젊은 모 재력가가 이같은 사기도박에 휘말려 무려 40억여원을 탕진했으나 증거가 없어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