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만섭 전 국회의장-17대 총선에 바란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새롭고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기에 모두 큰 관심 속에 이를 주시하고 있다. 또 이번 17대 총선은 실제적으로는 3김시대 종식 이후 처음 치르는 선거가 되며, 가깝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국면 이후, 국민들이 찬-반이 갈려 큰 갈등을 겪은 다음 치러지는 선거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할 것이다.

정치가 발전하려면 유권자가 깨어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이 그 대표자를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16대 국회가 의안통과의 횟수나 입법 활동으로는 그 어느 국회보다 많은 일을 하고도,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지탄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있는 비리 정치인들 때문이었고, 또 방탄 국회나 국회의원 석방결의안 통과와 같은 비리 정치인을 옹호하는 위선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7대 국회가 진정 새로운 국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양심적이며 깨끗한 사람들이 대거 들어가야 한다. 자질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갈 때 비로소 지난날과 같은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저질 욕설이나 몸싸움 같은 것이 사라질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입신만을 위하고 또 자기가 속한 정당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간다면 17대 국회는 또 다시 과거 국회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차제에 각 정당들도 이번만은 실로 뼈를 깎는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 나라의 역동감이 사라지고 나라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정당들은 단지 의원수 몇 석만을 더 늘리려는 소아적 발상에서 벗어나 진정 나라를 책임지고 국민들에게 국가 백년대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각 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왜 입후보자들은 보이지 않고 각 당의 대표나 선거대책위원장들만 보이는가. 천막 당사니 공판장 당사 같은 이벤트성 정치, 감성 선거는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또 하나의 구태고 국민 기만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모든 정당들과 입후보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공약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정견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또 진정한 민심은 무엇인지 모른 채 숫자로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만 급급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론 지지도에 들뜬 각 당 대표들의 경박한 언행도 더이상 재연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지금 우리 주변국들은 피땀을 흘리며 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권은 진정 국민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거듭남으로써, 긴박한 국제 관계, 침체된 국가 경제, 그리고 교육과 도덕의 붕괴 등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강조하거니와,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다시 힘을 얻으려면 국민이 앞장서는 수밖에 없다.

집으로 배달되는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으며 우리 지역을 위해, 그리고 깨끗한 이 나라의 정치를 위해 누가 합당한 인물인지 준엄한 재판관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나는 41년 간의 정치 여정과 국회의장을 지내면서 이 나라 정치의 숱한 비운을 몸으로 느껴온 사람이다, 정치원로로서 이번 선거가 치러지는 4월15일이야말로 어느 정당, 어느 후보의 승리가 아니라 온 국민, 모든 유권자의 승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무런 선거 후유증도 없이 새로 뽑히는 299명의 참신하고 깨끗한 일꾼들이 6월초 국회개원식에서 새로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믿음직한 의원선서를 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