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본능이라고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별도의 훈련 과정이나 노력없이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아버지 되기는?
90년대 우리 사회에는 '좋은 아버지 되기' 열풍이 불었다.
소설을 통해 중년 아버지의 인생이 반추되고 젊은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몇 개의 '아버지' 단체가 결성되어 운영되었다.
우리 사회는 왜 '좋은 아버지'가 되기가 힘든걸까?
◇중년의 아버지-자식을 위한 희생이 내 인생
이강덕(60.대구 내당동)씨는 아버지로서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렸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아버지가 돈이 없으니 공부를 못 시키겠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안 해본 것 없이 정말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 공부시켰습니다.
아마 나 또래 아버지들은 다들 그 생각에 살았을 겁니다.
나는 못 배웠으니 자식들은 원 없이 공부시키겠다.
그런 생각".
그런 삶에 후회는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고생을 모르고,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버지 말씀을 거역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새벽에 물 길어오라고 하시면 밤잠 설치면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있다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10리 길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에 토다는 일은 없었어요. 요즘 녀석들은 우리 때만큼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하는 일도 열심히 하지 않고 결과도 좋지 못하고, 맘에 안 찰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공부 시켜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젊은 아버지-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아버지면 만족
이강덕씨처럼 중년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을 아버지의 최대 사명으로 삼고 살아온 세대다.
이에 반해 요즘 젊은 아버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장인어른 이강덕씨와 함께 살고 있는 사위 김준현(37)씨는 희생하는 삶보다는 같이 즐기는 삶을 원한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로서 많은 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이라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되겠죠. 내가 못 이룬 꿈이 자식을 통해서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전 자식들이 스스로 삶을 꾸리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원하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친한 아버지로 남고 싶죠".
◇아버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들의 생각이 이렇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버지들의 바람을 실현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뺏는 아버지의 자리가 너무 크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돈벌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교육 경쟁에 뛰어들면서 부모들은 '우선 돈부터 벌자'하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고, 부모 양쪽 모두 자식 교육비를 충당하자는 이유로 '돈벌이'에 전념하는 경우 자식들의 정서적 공허함은 예전보다 더 커지기도 한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중년의 아버지들이나 과외비와 학원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직장에 오면 가족은 잊으라'는 산업사회 직장윤리 아래에서는 아버지가 자녀의 성장을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의 경험을 공유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남편의 육아 휴직이 아직 낯선 우리 사회 직장의 풍토는 아버지와 가족간의 거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아버지도 자식과 함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출세, 명예, 부 이외에 가족간의 유대와 자신을 성찰하는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아버지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자는 대원칙에 합의하여야 할 것이다.
◇은퇴 후 새로운 학습을 하시는 아버지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것은 대체로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따뜻한 손길과 잔소리에 얽힌 구체적 일화들이라면, 아버지에 관한 기억에는 구체적인 일화가 거의 없다.
그저 '아버지'라는 막연하도고 묵직한 존재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안방에는 아버지의 실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아버지의 자리'가 있다.
안방의 아랫목이 거기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퇴근 후 주무실 때까지 그 자리를 별로 벗어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거기서 아침 저녁상도 받으시고 책도 보시고, 가끔 밖에서 못다한 일도 하셨다.
우리 삼남매는 깔깔거리고 장난을 치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다투다가도 아버지가 퇴근하셔서 그 자리에 착석하실 때부터는 점잖은 아이들이 되어야 했다.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거나 배꼽 빠지게 우스워 방바닥을 뒹굴다가도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하시면 조용히 해야 했다.
우리가 무얼 하든 아버지는 그 전용 자리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우리도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독자적인 일'을 하면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 전용 자리에 아버지가 계신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 까닭이 큰 것 같다.
아버지 세대 대부분의 모범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아버지도 안방의 한 귀퉁이 아랫목을 당신의 자리로 삼으시고 '식구들 먹여살리기'에 매진하셨다.
그러는 동안 식구들은 집안 구석 구석을 알콩달콩한 이야기, 눈물범벅인 이야기들로 채워갔다.
아버지는 그 많은 사연을 지금껏 모르셨다.
기나긴 일을 마치고 퇴임 후에야 가정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늦은 '진도'를 따라잡느라 한동안 힘이 드셨다.
아버지에게 혼날까 싶어 어머니와 '모의'하여 숨겼던 일도 아시게 되고, 자식들의 소소한 취향도 아시게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술 한잔과 함께 대화를 제의해 오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따라잡기에는 아버지와 우리가 서로를 모르고 지낸 시간은 너무 길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늘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박경(대구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진: 자식을 위한 희생이 바로 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강덕씨(왼쪽)와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아버지면 만족한다는 김준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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