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해 소련 당국자들을 경악케 했던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미국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수퍼마킷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많은 미국인들의 실소를 자아냈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배급제에 길들여진 그녀로서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물건 사는 일이 고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례 둘. 구 소련시절 '모스크바의 살수차'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도시 청결을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각에 살수차가 시내 주요구역에 물을 뿌렸는데 웃기는 것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한 겨울에도 물 뿌리기는 계속됐다는 점이다. 비능률의 극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물을 뿌린 것은 그 일을 지정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을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 두가지 사실(史實)은 우리에게 자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자유는 인간 행복의 최대 전제조건이지만 괴로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과 판단을 했다. 오늘의 선택과 판단이 우리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모습을 띠건 전적으로 우리들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모두들 신중하게 선택하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판은 유권자들에게 신중한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탄풍(彈風) 박풍(朴風) 노풍(老風)이 선거판을 휩쓸면서 정책.인물대결은 실종됐다. 그 틈을 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이미지 정치가 횡행했고,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지역주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혹자는 '특정 정당의 독식도 민의'라고 한다. 여기에는 '민의는 무조건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의가 과연 지고지선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 지도층 인사들은 특정 정당이 독식한 결과 대구.경북이 정체와 퇴보를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지역민들도 상당수가 이같은 지적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근대 민주주의 창안자들은 일정한 재산과 학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려 했었다. 잃을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은 책임있는 선택과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구나 1표씩 행사하는 방식으로는 지고지선한 민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이들처럼 민의의 지고지선함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런 고민을 한 것은 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권자들도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대구.경북 뿐만 아니라 호남 등 다른 지역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인류는 족외혼이라는 기막힌 제도를 만들어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인류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적 결함 때문에 서서히 절멸해 갔을 것이다. 특정 정당의 독점을 근친혼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정경훈 정치2부 차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