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윤달이 끼어서인지 아직 4월 하순인데도 봄이 짧은 대구의 한낮은 햇살이 따갑다.
달력을 봐도 다음주면 벌써 입하(立夏), 완연한 여름철로 접어든다.
오늘은 무더워진 날씨따라 시원한 냉면 이야기나 해보자.
냉면을 먹을 때마다 궁금한게 있었다.
냉면에는 왜 계란 노른자를 넣을까. 그것도 꼭 반쪽으로 잘라서 얹어 놓으며 채를 썬 배 조각과 편육.계란 중 어느 것을 맨 먼저 먹어야 옳은 순서인가 등등….
'식성따라 먹은 싶은 대로 골라 먹으면 그만이지 냉면 한그릇 먹는데 순서까지 따질것 뭐 있느냐'고 생각해 버리면 실없는 궁금증일 뿐이긴 하다.
그런데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냉면 먹을때는 계란 조각을 맨 먼저 먹는게 좋다고 권한다.
이유는 냉면의 메밀가루는 입자가 거칠기 때문에 냉면 면발이 위벽에 곧장 닿으면 속이 편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계란으로 일단 위벽을 한번 쓰다듬은 뒤에 자극적인 겨자 풀린 국물과 면을 먹는게 좋다는거다.
계란을 반쪽으로 자른것도 삶은 계란을 통째 다 먹거나 편육만 수북이 넣게 되면 위벽보호는 더 될지 모르지만 배가 불러 냉면 맛이 덜해지고 반쪽으로 자르면 노란색이 드러나 양도 적고 시각적으로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어쨌거나 엊그제 손님들과 올들어 처음 냉면을 먹으며 17대 총선 이후의 정치권을 떠올려 봤다.
냉면 한 그릇에도 나름대로 갖가지 곁반찬의 조화된 비율이 있고 제대로 음식을 즐기는 합리적 우선순서가 있다는데 새로 뽑힌 정치권은 과연 얼마나 서로 잘 조화되고 국정의 우선 순위를 가려내 끌어갈 건가라는 의구심 같은 것이 었다.
여당이 과반수를 고만고만하게 넘기고 야당이 적정한 견제세력 범위를 유지해낸 소위 '황금분할'은 냉면으로 치면 계란.배.편육처럼 나름대로 주방장(국민)의 조리솜씨가 잘 반영된 셈이다.
만약 냉면 사리만 한그릇 가득 내놓고 계란이나 편육은 한조각도 안 얹어놓은 냉면처럼 열린우리당 일색으로 뽑아놓았거나 그 반대구도의 국회를 생각해보면 제대로 상생 정치의 맛을 낼 수 있었을까.
이제 새 정치권이 여.야 함께 공존을 모아가야할 것은 어느 지역에서 싹쓸이로 사리를 너무 많이 넘어줬다거나 어느 지역 때문에 계란과 편육이 너무 적게 들어갔다는 식의 부질없는 '지역주의 시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표 붓두껍의 인주 자국도 채 마르기전에 대통령의 탄핵철회 같은 정치성 주제를 꺼집어내 여야 대표회담 하자고한 정치감각은 계란부터 먹으라는 냉면먹는법 수준에도 못미치는 아마추어 정치감각이란 비판을 듣기쉽다.
새 국회와 물갈이된 정치권이 가장 먼저 말 꺼내고 집중해야할 국정과제는 여당 대부(代父)의 구명운동이 아니라 경제, 취업, 비정규직과 서민복지개선, 대북 공영외교 같은 민생현안들이어야 옳은 순서다.
경제대책에 관한 공약과 실천노력이 전연 없지않은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긴 하나 민생쪽을 더 부각시키고 힘을 실어주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여당 의장이 '20~30년 이상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등 집권에만 집착하는 듯한 오해될 망언을 성급히 발설한 것도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하라고 여대야소를 만들어 주었는지 제대로 감잡지 못한게 아니냐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
보좌관을 공채하겠다는 민주노동당의 개혁안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러한 거대여당의 서두른 모습 탓이 큰지 모른다.
여당의 정치적 대부(代父)격인 노 대통령 또한 새국회가 개원도 안된 시점에서 헌재(憲裁)의 판결이 진행중인 처지를 잊고 인사들을 청와대 밥상앞에 불러 모아 소위 '식탁 정치'부터 서두른 듯한 신중치 못한 행보를 삼가주시는 것이 새로 태어난 여당을 돕는 일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결과를 가지고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 대한 재신임으로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해석 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세계적인 리더십 교육지도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자연의 실체와 인간의견의 차이를 두고 '정북향(正北向)을 투표나 다수의견으로 정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비유를 했다.
동쪽을 보고 북쪽이라고 투표한 사람이 더 많다고 동쪽이 북쪽이 되지는 않는다.
실체와 인식이 일치할 때도 있겠지만 아닐때도 있다.
국회의원 후보 개인별 지지투표와 국가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의 실체가 다를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겸손이 필요해보인다.
아전인수는 판단의 오류와 빗나간 자만의 폐해를 낳기 쉽기때문이다.
코비 박사는 유명한 '7가지 습관(seven habits)'중 세번째로 '소중한 것 먼저하기'를 가르치고 있다.
새 정치권에게 냉면의 계란 먹기처럼 자유민주 국가유지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국민복지를 위해 무엇이 가장 먼저 해야할 '소중한 것'인지를 가릴 줄 아는 지혜와 함께 좀더 겸허해짐으로써 이번엔 정말 제대로 뽑은 새 정치꾼들이란 칭찬을 받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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