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얼굴 잃은 문화

"대구시립오페라단에서 '마술피리' 공연하는 거 알아요?"

술과 시와 노래를 좋아하고, 예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마치 사춘기의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뜨거운 삶을 살아가는 김 아무개로부터 지난달 중순경 불쑥 전화가 왔다.

"들었어요. 그런데 왜요?"라고 내가 되묻자 그가 좀 황당한 어조로 "아니 내가 조금 전에 오페라단 감독을 만났는데…. 아 글쎄 가사를 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른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 거였다.

나는 시큰둥한 어조로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러면 어떻단 얘깁니까?"

그는 말귀를 왜 이리 못 알아듣느냐는 듯 더욱 조급해진 어투로 긴 설명을 시작했다.

"아니 오페라의 가사라는 게 그게 다 하나의 시와 버금가는 것들 아닙니까. 그리고 시라는 것은 고유의 운율과 리듬이 있잖아요. 노래라는 것은 바로 이 시의 운율과 리듬을 바탕으로 아주 섬세하게 작곡된 것들이고, 바로 이것이 살아날 때에만 비로소 노래가 생명을 가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어순과 문장구조가 전혀 다른 우리말로 다 바꿔버리면 원어 가사속에 녹아있던 운율과 리듬은 다 죽어버리고 말 텐데 단순히 가사내용을 알아듣게 할 목적으로 우리말로 공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이죠".

그의 목소리는 점차 격앙되어갔다.

그래서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그래 우리말 가사로 부르니 청중이 다 알아듣기나 한답디까?" "아니 그게 더 황당해요. 우리말로 노래해도 도대체 청중들이 알아듣질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막을 쏜대요 글쎄…. 그런데 자막을 쓸 것 같으면 뭐하러 우리말로 합니까?"

그에게 다시 물었다.

"원어로 노래한다 해도 그 가사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운율과 리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연주자나 청중이 있을까요?"

전화를 끊고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사에 대한 시적인 감흥과 감정의 몰입 없이 외국 유명 오페라 가수의 억양을 그대로 흉내내어 뜻도 모르고 애절한 척 부르는 노래를 해설서에 나와 있는 줄거리와 장면의 묘사를 통해서 이런 말이겠거니 하고 짐작하여 청중들은 듣고 있다.

참 어색하고 기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연주인가, 연주 흉내내기인가? 오페라인가, 오페라 흉내 내기인가? 예술인가, 예술 흉내 내기인가? 이러다가 우리의 삶조차 흉내 내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상만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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