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는 묵을수록 소리결이 곱다.
반면 '악기의 제왕'인 사람의 목소리는 그렇지 못하다.
울림통이 몸인지라 노화에 따른 소리의 열화는 숙명과 같은 것. 때문에 성악가들의 전성기는 짧다.
오페라 현역으로 30여년을 뛰고 있는 소프라노는 흔치 않은데 신미경(50)은 올해로 오페라 데뷔 30주년을 맞았으면서도 대구의 오페라 무대에서 프리마 돈나로 통한다.
신미경은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해 계명대 성악과를 수석 입학.졸업하고 한양대 음악대학원.이탈리아 로마 예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974년 대학교 3학년 시절 계명오페라단의 '마르타' 공연에서 '낸시' 역으로 오페라 첫 무대에 선 이후 수십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성대 관리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후배들은 신미경을 '대구 성악계의 왕언니'로 부른다.
동년배들은 그를 '인간성 좋은 소프라노'라고 일컬었다.
워낙 후배들 잘 챙겨주고 마음 씀씀이가 자상하기 때문이다.
연주홀에서 신미경은 음색과 복장이 화려한 프리마 돈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대명동 그의 연습실에서 만난 신미경은 수수한 옷차림의 이웃집 아줌마와 같았다.
선이 굵은 외모인 신미경의 소리는 외모와 닮았다.
그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스핀토'(soprano spinto) 즉 격정적이고 극적이다.
소프라노이면서도 저역이 두텁다.
이 때문에 대학 합창단 시절 여자 음역 중 가장 낮은 알토는 늘상 그의 차지였다.
오페라에서 신미경은 '토스카', '나비부인'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았다.
신미경은 "낙천적이고 호방한 내가 어쩌다 보니 '비련의 여주인공'을 많이 맡게 됐다"며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1996년 대구시립오페라단의 '토스카' 공연 때가 기억납니다.
공연이 끝나고 만난 딸 아이가 엄마 노래를 듣고 감명받아 울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뿌듯했습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구요".
신미경은 지난 20일 대구동구문화체육회관 공연장에서 오페라 데뷔 30주년 기념 독창회를 가졌다.
대구의 성악가로서는 처음으로 전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부른 무대였다.
30여년 무대 경험을 쌓은 그도 그날만은 무척 떨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러나 막상 한 두 곡을 부른 뒤부터는 "이게 아니다" 싶어 "연습 그대로 즐기듯 노래하자"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차분해져 이후 특유의 카리스마로 무대를 이끌어갔다.
신미경은 대구지역 음악계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인데도 외지에 대한 벽을 너무 높게 쌓아두고 있다"고 했다.
또 공부하지 않는 음악인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갈라먹기식으로 오페라와 음악회를 양산해 내는 풍조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음악은 시간적으로 유한하기 때문에 가치있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신미경은 여태 음반을 내지 않았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데다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앞으로도 한 10년은 더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겠지요".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사진 : 신미경은 올해로 오페라 데뷔 30주년을 맞았으면서도 대구의 오페라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통한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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