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작은 물길에서 희망 찾자

쓸데없는 비용을 냉혹하게 잘라낸다는 뜻인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을 지닌 카를로스 곤 일본 닛산자동차 사장은 레바논계 브라질 출신이다. 프랑스 대학을 졸업하고 타이어 메이커인 미쉐린에 입사하여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42세때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서열 3위로 스카우트되었다.

이때 마침 도요타와 함께 '기술의 닛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갖고도 정작 자동차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추지 못한 닛산자동차는 새로 개발한 신차들을 팔지 못해 대형적자를 냈다. 어쩔 수 없이 닛산은 일본의 핵심 제조사 지분을 외국에 매각한 첫 사례라는 오명을 남기고 프랑스 르노사에 자사 지분(37%)을 팔면서 위탁경영까지 요청했었다.

이에 르노자동차가 파견한 구조조정 전문가가 바로 카를로스 곤 사장이다. 일본땅에 발을 디딘 곤 사장은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통해 적자 공장 폐쇄, 계열사 매각, 부품메이커 정리를 하여 그의 별명처럼 악성 코스트를 대폭 삭감시켰다.

'닛산 리바이벌 플랜' 첫 3년 동안 곤 사장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세븐-일레븐)까지 일하며 35세부터 45세 사이 중견 간부 600명과 3개월 동안 면담했고, 이 기간 동안 근로자 4만명 중 8천800명을 감원시켰다.

기업을 되살릴 때까지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비난을 감수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카를로스 곤 사장은 그래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6일 펴낸 'CEO, 성공과 실패의 조건'이라는 보고서에서 칼리 피오리나(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와 함께 '기사회생형 CEO'로 분류됐는지도 모른다.

이 보고서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보다 더 큰 성과를 낸 한국식 '기사회생형 CEO'가 있다. 대규모 부채가 발생한 데다 오랫동안 파업을 계속하여 헤밀턴사가 경영진단에서 '도저히 살아남기 힘든다'고 했던 구미 ㅎ사에 단신으로 부임, 기업을 반석위에 올린 최고 경영자가 바로 서두칠 한국 이스텔즈시스템 대표이다.

필자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대우자동차가 GM사로 넘어가기 전에 서 사장에게 맡기면 유수한 대기업을 외국사로 넘기지 않고 기사회생시킬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그렇게 진전되지는 않았다. 어떻든 서 사장은 대우그룹 계열사로 IMF 때 1천114%의 천문학적 부채와 무려 77일간 파업이 계속되던 ㅎ사 대표로 선임되면서 파업현장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1일 3교대하는 공장에 맞춰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조를 바꿔가며 전사원과 만나 대화하고, 식당에서 같이 밥먹고, 소파에서 잠깐씩 새우잠을 자며, 기업 정보(수입과 지출, 회사 마스트플랜 등)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회사 안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갔다. 열댓평 짜리 사택에는 옷을 갈아입을 때만 다녀갔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이제 바닥짚고 올라가자"며 직원들을 독려하던 서 사장은 상호 신뢰의 기반위에 CEO로서 전사원에게 한가지를 약속하고, 한가지를 당부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껏 회사에 청춘을 바친 직원들을 짤라내지 않겠다"는 약속과 "세계가 알아주는 우리 두뇌로 독자적인 초박막 제품을 생산, 세계에 내놓자"는 당부가 그것이었다.

동료가 짤리면 나도 짤릴까봐 불안해서 일이 되지 않는 한국적인 기업 풍토를 잘 알고 있는 서 사장은 빛이 안보이는 적자회사에서 전 직원을 끌어안고 가야되는 비용부담을 독자적인 신기술 개발로 타결하는 정공법을 채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ㅎ사는 단 한명도 짜르지 않고 IMF 터널을 빠져나왔고,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다.

다같이 회사를 살리자는 각오 아래 신명나게 일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회사를 앞장세워 내 주머니만 챙기는 이중 플레이를 하지 않으며, 우리 안에 숨어있는 역량과 역동성을 살려내 대규모 적자 기업을 '초일류기술을 지닌 알짜 기업'으로 되돌린 것이다.

최근 유례없는 대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사철이 되어도 서민들은 집을 옮기지를 못하고, 밤 9시만 되면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지를 않는다. 생필품이 아니면 사먹지 않고, 어지간히 아파서는 약도 사먹지 않는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을 다 내보내고 중기업에서 소기업 또는 1인 기업으로 내려앉은 기업인들은 어떻든 경기가 되살아나 이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만 고대하며 버티고 있다.

곤궁한 삶을 타결시킬 경제 활성화 전략,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잠재적 역량을 어떻게 끌어내고, 투명한 경영과 부패척결로 신뢰를 쌓아가며, 시장(市場)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상품을 내놓고, 정책으로 뒷받침해주느냐에 달려있다.

'큰 물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물길부터 더듬어야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최미화 경제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