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편지- 강재섭 의원

날 좋은 6월의 정오, 나른한 햇살이 의사당 지붕에 내려앉아 앞마당의 파란 잔디를 비춥니다.

점심을 하고 짬이 나는 날이면 가끔 의사당 뜰을 걷습니다.

여느 국회 때보다 분주히 여닫히는 의원회관 출입문을 나와 발길을 국회 정문 쪽으로 내딛습니다.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그늘에 서 있습니다.

현장 학습을 나왔는지 꼬마 녀석들이 한바탕 소음을 일으킵니다.

손에 든 디카를 '재깍 재깍' 눌러대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던 아이들이 해태상 앞에 섰습니다.

사자다 호랑이다 서로 승강이하며 선생님의 하나, 둘, 셋 소리에 다들 모델이라도 된 양 한껏 모양새를 내봅니다.

의사당을 좌우에서 지키고 있는 해태는 파사현정(破邪顯正), 즉 '그릇됨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세운다'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파사현정은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으로 얽매이는 마음을 타파하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입니다.

해태에 관해 옛 문헌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하기도 하였습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을 준공하면서 비단 화재 예방만을 위한 기원의 상으로 해태를 두지는 않았을 터, 암수 한 쌍의 해태는 엄숙한 얼굴로 파사현정을 국민의 종복들에 이르고 또 이르는 것만 같습니다.

국회의원을 '국민의 지팡이'로 여기며 시작했던 초선 의원 시절의 풋풋한 결의가 국민의 부름을 다섯 번이나 받아 5선 의원이 되는 동안 조금씩 누그러지지는 않았는지, 행복한 국민 잘 사는 나라 만들라 키워주고 길러주신 국민의 기대를 때때로 잊지는 않았는지, 큰 기대를 바른 정치, 큰 정치로 펼쳐보겠다는 당찬 각오가 그대로 가슴에 고동치는지 문득 되물어 보았습니다.

지난 총선 기간 동안 지역 주민들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은 소리는 '제발 싸우지 말라'였습니다.

나라 살림과 민생은 뒷전에 두고 당리당략만 앞세운 이전투구에 우리 국민이 얼마나 염증을 내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당장 해태의 성난 뿔에 치일 거친 싸움 소리 대신에 편안하고 아늑한 선율로 17대 국회의 5선지를 채워 멋드러진 오케스트라의 향연장으로 국회의사당을 리모델링하리라 다짐합니다.

국회의사당의 해태상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해태상을 세우면서 기단 10m 밑에 백포도주 100병을 묻어 두었다는데 100년 후나 통일 후에 축하주로 사용할 목적이라고 합니다.

머지않은 날 저 포도주를 꺼내 국민과 함께 기쁨의 축배를 들 때를 흐뭇하게 상상하며 무서운(?) 해태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봅니다.

그 놈 참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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