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이미 오래 전 나는 가슴 한쪽을 뜯어냈다

더는 상하지 말라고 던져버렸다

남은 가슴으로도 충분히 아플 수 있으므로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라

느껴질 때, 그런 내가 대낮인데도

하늘을 훔쳐보게 될 때

남은 가슴을 퍽퍽 치면

등뒤의 어둠이 갈라지며

어둠이 토해낸 비명처럼 떠오를 것이기에

머잖아 내게도 그런 날이 잦을 때

꺼내와서 채워보리라

남은 가슴이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꺼내와서 맞춰보리라

김정용 '초승달'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의 '돌연'은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의 고통을 강화하고, 남은 가슴이 왜 충분히 아파야 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둠이 토해낸 비명이라니, 초승달이 상하지 말라고 뜯어낸 한 쪽 가슴이라니! '비명'은 어둠의 각질을 뚫고 일어서는 삶의 경이임을 그대는 안다.

초승달이 망가진 기계의 맞은 편이듯 그것은 딱딱한 죽음의 반대말인 것, 남은 가슴으로 충분히 아파야 하는 이유 아닐까. 머잖아 우리에게 그런 날이 잦을 때 추억을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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