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이렇게 본다-당당한 자기 표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발사는 결국 소리치고 말았다.

살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는다는 것, 그건 죽기를 각오하게 만드는 고통이 아니었을까?

결혼 1년차인 나도 그런 답답한 상황에 처한 적이 많다.

며느리를 딸이라 생각하는 맘씨 좋은 시아버지를 둔 덕분에 시집살이가 별로 고되지 않았던 나에게도 말못할 고민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입맛이 까다로우셨기 때문에 식사때면 잔소리가 그치지 않았었다.

"반찬이 맵다.

이건 너무 짜다.

국에 간이 안 되었다.

" 시어머니가 난처해 하실 것 같아 처음 몇 번은 "어머 맛있는데요" "어머니 요리 잘 하시네요"라는 물타기 수법이나 '안 들은 척 모른 척' 미적지근한 태도로 상황을 넘겼다.

그렇지만 그런 인내는 상황을 결코 호전시키지 못했다.

어느날엔가 드디어 참을 수가 없었던 난 일을 쳐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밥은 편안한 마음에서 먹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도 수고하시는데 맛있게 드셔주세요."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로 우리집 식사시간은 좀더 평화로워질 수 있었다.

인내와 희생으로 무장한 어머니들의 삶이 어려웠던 시절 가족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었다면, 오늘날 신세대 주부들의 당당한 자기표현은 그런 가족을 더욱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여성의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갈등을 피해 갈 수 없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부들의 건강한 자기표현은 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명화(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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