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톱밥에다 톱질하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늘나라에서도 잠자리가 편하지 않으실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국회를 장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놓은 '특별한'법 때문이다.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

'반민족' '진상규명' '특별' 같은 서슬퍼런 용어에다 법이름이 25자(字)나 될만큼 긴 걸로 봐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척 중요한 법처럼 보인다.

더구나 지난 3월 국회서 제정된 뒤 9월부터 시행키로 돼있던 법임에도 아직 시행한번 안해보고 다시 더 뜯어고치고 강화해야 된다며 서둘고, 어젯밤엔 KBS까지 나서서 잠안자고 심야토론 벌인걸 보면 이 법을 안바꾸고서는 당장 나라 경제고 뭐고 제대로 안될 정도로 절실하고 긴급한 법인가 보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왜 적잖은 사람들은 법 만들자는 쪽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기는 법을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느니 그의 딸을 공격하기 위한 법이라고들 하는걸까. 여당은 당연히 개정안을 내건 목적이 민족정기세우기 일뿐이지 박정희 친일행적을 캐내 박근혜씨를 '일본군 중위의 딸'로 부각시키자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반대로 당초 중령급까지만 친일행적 조사를 하려던 대상기준을 갑자기 소위까지 낮추겠다니까 저절로 일제때 일군 중위 경력을 가진 박 대통령의 친일시비를 걸어넣으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틀린 소리는 아니다.

솔직히 60~90년전 일제하 조선인들의 친일과 반일을 구분짓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애매하다.

친일과 반일의 경계선은 결국 행적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보기에 따라서(관점)'라는 논리를 이해 해보자는 뜻에서 독립운동 33인에 대한 어느 단편 소설의 묘사를 예로 들어 보자.

그 소설속에서 일본인 순사가 젊은 조선 지식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33인을 독립지도자라 할지 모르나 그들은 태극기를 든 민중들이 헌병의 총을 맞아가며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갈 때 위험한 길거리 신 안전한 식당에 모여 독립선언서 한장 써서 읽고는 조용히 역시 안전하게 감옥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졌다.

순진한 민중은 총에 맞아 죽고 지도자는 영악하게 목숨을 부지했다' 조선의 독립운동과 그 지도자의 애국심에 대한 일본순사의 악의적 시각이요 모독적인 관점이다.

똑같이 일제시대 중위가 되기 전 박정희의 행적도 상반된 관점으로 살펴 볼 수있다.

그는 사범학교 재학시절 축구부 골키퍼였다.

그는 항상 연습 때 공을 한국인 선배 선수에게 차 주었고 일본인 선배 선수쪽으로는 일부러 안보내주었다.

일본인 선배는 내 선배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고 그게 발단이 돼 축구부에서 쫓겨나고 성적표의 품행란엔 가(可)로 꼴찌 성적을 받았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1972년 당시 사범학교 일본인 교사였던 요네사쿠씨를 청와대에 초청해 시계를 선물한 적이 있다.

초청 내막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사범 4기생인 박 전 대통령 졸업반의 졸업앨범에는 일본 연호인 '소화'를 쓰지 않고 조선의 연호인 단기와 서기(1937년)가 씌어져 있다.

신사참배 사진에는 신사 대신 페스탈로치 상을 몰래 바꿔 넣었다.

저항적인 항일의식의 표현이었다.

초청된 요네사쿠 선생은 바로 앨범 제작 담당 교사였고 교장 몰래 조선 학생들의 저항적 반일 행동을 묵인해 주었던 것이다.

우호적 관점으로 이런 박정희의 행적을 본다면 독립투사까지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매국적 친일 분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박정희 중위를 친일파로 몰아 보겠다는 의도나 관점으로만 보려한다면 그의 저항적 행적은 별것 아닌 해프닝이고 중위 계급장을 단 사실만으로 그의 다른 모든 행적도 함께 친일속에 쓸어넣어 버릴 수 있다.

만약 박정희가 중위가 아닌 하사였었다면 개정안에는 병장이나 일등병 까지로 기준을 낮췄을까? 그것도 관점의 문제다.

친일행적은 상당 부분 나름대로 심판받고 역사의 기록속에도 남겨졌다.

민족정기도 좋지만 무슨 일이나 적절한 선이란게 있다.

끝없이 기준을 내려가며 캐내겠다는 식의 친일뒤지기나 이런저런 뒤로 가는 개혁들은 이미 톱질이 끝난 톱밥에다 톱질을 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바 없다.

이왕이면 좋은 관점을 지니고 앞으로 가라.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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