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가 천천히 아마다바드 시내로 향한다.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철제 울타리에 잔디 정원을 갖춘 꽤나 고급스러운 주택들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차고에는 하나같이 일본산이나 한국산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나는 대다수 주택의 주인들이 무슬림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을 떠올린다.
금욕적이며 비세속적인 힌두교인과 달리 근면하고 부지런한 무슬림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임에도 인도 사회에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종교적 교리에 의한 이런 빈부의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더불어 인도의 미래에 커다란 불안으로 자라날 것이다.
시크교와 자이나교,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와 불교가 뒤엉킨 복잡한 인도에서 신들의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카슈미르 분쟁이나 1984년의 반 시크교 폭동, 1992년, 2002년에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슬람과 힌두교인의 분쟁이 언제 다시 재연될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
버스가 도심으로 들어선다.
도시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수많은 빌딩들, 거리를 메운 자동차들과 행인들, 휘황한 전등이 켜진 상점들로 가득 차 있다.
철제빔과 대형 유리를 사용하여 지은 현대적인 빌딩들은 몇 년 전 큰 지진이 있은 후에 신축된 건물들일 것이다.
도로의 교통도 예전에 비해 한층 나빠져 있다.
교차로마다 신호등이 설치되고, 많은 자동차와 행인들이 길게 몰려 서서 신호등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적인 질서로 움직이던 인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경제적 발전, 혹은 도시적 활기라고 불러도 좋을 이런 번화함이 나로선 그리 달갑지 않다.
마치 급속하게 발전한 중국의 어느 공업도시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경제적으로 발전한 신흥공업도시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욕망과 물질을 소비하며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 같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또한 신비에 싸인 인도가 도시를 중심으로 조금씩 서구적인 형태로 바뀌는 게 안타깝다.
어쩌면 인도는 이제 동서양 철학의 경계에 서 있는지 모른다.
나는 흔들리는 탑으로 유명한 시디 바쉬르 모스크를 비롯한 몇 가지 유적을 둘러본 뒤 되도록 빨리 아마다바드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변덕스런 도시는 나그네에게 별 매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뉴델리 역전의 메인 바자르(Main Bazar). 나는 길을 걸으며 주의를 기울인다.
자칫하면 뒤에서 오는 사이클릭샤 바퀴축에 장딴지나 오금을 부딪히기 일쑤다.
그만큼 메인 바자르는 항시 인파로 북적댄다.
거리에서 풍겨나는 냄새 또한 다양하다.
향신료 냄새, 버너에서 채 연소되지 못한 채 뿜어져 나오는 석유냄새, 향 연기, 매캐한 먼지냄새, 인도인들의 땀내와 분별하기 힘든 이런저런 음식냄새, 달콤한 과육(果肉) 향기, 이 모든 것이 뒤엉겨서 인도 특유의 냄새가 된다.
마치 성(聖)과 속(俗), 신과 인간, 물질과 정신, 문명과 원시가 분류할 수 없는 죽처럼 엉겨 있는 인도의 실상과 같이.
나는 좌우로 늘어선 상점들의 물건을 구경하며 바자르 안쪽으로 들어간다.
시장 한 구석에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골든 카페'(Golden cafe)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라면, 김치 등의 메뉴가 붙어 있는 카페 안에는 몇 명의 한국인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그 속에서 혜원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녀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다른 탁자로 옮긴 그녀와 밀린 얘기를 나눈다.
푸른 계열의 펀자브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을린 얼굴에 눈빛이 한결 깊어져 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를 방황의 기미도 어려 있다.
그녀는 오늘 밤 기차로 남인도 방면으로 내려가 볼 작정이라고 말한다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간 인도를 여행한 소감을 묻었을 때 그녀가 자신 없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아직 인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인도를 알려고 하는 자체가 무리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는 있어도 우리네 운명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인도는 오랜 역사와 종교, 인간들의 삶과, 자연의 축적물이다.
그걸 안다는 것, 또 기술한다는 건 죽은 사마천이 되살아난대도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도를 이해하기 힘든 건 인도가 여성적이라는 점이다.
이성과 과학, 물질과 경쟁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으로의 서구적 사회와, 운명과 신앙, 정신과 수용으로 구분되는 인도는 분명 다르다.
인도는 세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여성성을 지닌 소중한 나라다.
다른 나라들은 이제 모두 개발과 경쟁, 세계화라는 서구적 이념 하에 남성성으로 전환 중이거나 전환되어 있다.
그 여성적인 인도를 남성적인 서구 문명적 개념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더불어 결혼하고 살아가지만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몸을 가질 수는 있어도 영원히 정복할 수는 없듯 자비와 사랑, 수용과 관계 속에 살아가는 여성과 이론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남자들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다.
우리는 물질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서구적 미망에 빠져 있고, 인도는 윤회를 믿으며 저 먼 내생의 꿈을 꾸고 있다.
우리가 인도를 꿈꾸는 건 인도가 지닌 평화와 안식, 이해와 관용, 온화함, 비물질적인 삶에서 오는 영혼의 자유스러움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를 옮겨 타기에는 너무 욕망과 문명의 맛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제 인도는 우리 현대에 남은 마지막 오아시스라는 생각을 해본다.
끝없는 반목과 경쟁의 수레바퀴. 나 아닌 모든 인간이 적일 수밖에 없는 이 비정한 현실에서, 인도는 우리에게 탐욕에 빠진 삶을 성찰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정신적 안식처라고….
'안녕히, 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그녀가 인도여행을 마칠 때쯤이면 삶에 대한 해답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건 또한 인생의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바람이기도 하다.사진: 샤 자한의 최후 걸작인 델리의 자마 마스지드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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