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몰락하는 '宗家 선산'

구미와 통합후 쇠락...대책마련 촉구

예부터 종가(宗家)'종택(宗宅)이 문중이라는 집단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했다.

자신들의 뿌리가 그곳으로부터 출발했음을 인식했고 타인과의 차별성과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문중내 후손들은 저마다 종가와 종손(宗孫)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구미시의 종가나 마찬가지인 '선산'이 홀대받고 있다.

종손(주민)들도 몹시 불쾌해하고 있다.

이러다 자칫 종가인 선산의 몰락으로 '구미'라는 문중의 정체성과 역사성이 현대 산업화에 묻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일고 있다.

▨몰락하는 '종가 선산'

최근 선산발전협의회 소속 선산주민 10여명은 선산발전 대책마련을 촉구하면서 구미시청을 항의방문했다.

이날 주민들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구미의 종가 선산의 현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선산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7일 선산장터는 외지 상인들로 넘쳐났다.

대부분 구미'김천'칠곡 등에서 몰려 온 이들로 선산읍내 상가 경기침체와 지역자금 역외유출 등 또 하나의 선산이 안고 있는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같은 날 북적이는 장터와 달리 읍내 상가밀집지 점포들은 거의 절반정도가 셔터문을 굳게 닫은 상태다.

이미 주인이 떠났거나 폐업한 점포거나 아예 장사를 포기한 상태다.

선산읍이 점점 몰락해가고 있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현장이다.

구미시의 종가인 선산이 허물어지고 있어 '선산읍 살리기'가 시급하다.

지난 1995년 선산과 구미가 통합돼 '구미시'로 출범하면서 2만5천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1만9천여명으로 줄었다.

군청 등 군 기관들이 폐쇄되거나 구미시 기관으로 통폐합돼 떠났다.

그나마 주민들의 반발과 유치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KT&G'한전'등기소 등 출장소 규모의 기관들조차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기관이전은 임구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지역상가의 몰락, 경기침체로 치닫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이 때문에 지역민들은 선산가꾸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각종 개발계획을 구미시에 요구하고 있지만 언제 사람들이 다시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선산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하는 것은 '구미시의 태도'다.

선산발전협의회 김재영 회장은 "맏형이 집을 지키고 농사지어 아우를 교육시켜 놓으니 이제는 집까지 내 놓아라 하는 꼴"이라 토로한다.

선산 출신의 한 공무원은 "사실 구미지역의 여론형성은 선산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며 "그만큼 주민들의 출신에 대한 뿌리 의식이 여론 합의 도출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런 '뿌리의식'이 구미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이런 선산개발에 구미시가 미적거리고 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교리구획정리사업'은 공고기간이 8년째를 넘기고 있다.

구미시가 직접 공사를 하겠다고 하지만 언제가 될지 주민들의 가슴만 타들어간다.

게다가 선산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녹지도 개발을 제한하고 오히려 기업들이 고아나 김천 아포로 떠나게 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산업과 공단에 온 행정력이 집중되는 통에 농촌과 선산이 갈수록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

구미시의회 김대호(선산읍)의원은 "국도 33호선 대체도로로 계획중인 강변도로의 시급한 개설로 구미시와 접근성을 높일 경우 전원주택이나 임대주택 건설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며 "남녀 중'고의 통합과 교리구획정리사업, 농촌경제 부흥 등이 선산을 번듯한 종가(宗家)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고 했다.

▨'농협시지부'마저…

선산주민들이 농협 구미시지부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것마저 떠나면 뭐가 남는가?"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절박한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는 "사실 농협 시지부가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다.

선산농협이 있고 시지부 출장소 운영으로 충분하다.

농협으로서도 시장이 넓은 구미시내로 이전해 다른 1금융권과 경쟁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는 의견들에 공감한다.

하지만 지난해 구미시 송정동 동아백화점 앞에 이전을 위해 청사를 지어 놓고도 주민들과 농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선산에 주저앉아 있는 '농협 구미시지부'에 대한 주민들의 심정은 선산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주민 권모(42)씨는 "농협중앙회가 언젠가는 구미시로 이전할 것이다"며 "또 이전하는 것이 여러가지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주민들이 '농협'이라는 기관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 놓아주지 않는 것"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농협중앙회 구미시지부 관계자도 "사실 고객 등 형편을 보면 구미시로 이전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주민들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데다 농협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붙잡는 상황에서 이를 뿌리치고 떠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모두가 외면하고 떠나는 선산, 마지막 남은 기관 농협중앙회 구미시지부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무엇이며 이전 타당성은 어떤지에 대한 관계자와 주민들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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