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속에 있는 핵 한 개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0권 전부에 들어있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우리가 스테이크를 먹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천억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찢어 없어지는 셈이다.
생명은 자연에서 가장 정교하고 신비로운 복잡계이다.
이처럼 경이로운 존재가 그냥 생겨났을까.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진화론자이다.
그의 또다른 역작인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통해 진화론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재확인할 수 있다.
책 제목의 '시계공'이란 말은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논문 '자연 신학 또는 자연현상에서 수립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 논문은 가장 영향력 있는 창조론 해설서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우리가 시계와 같은 사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시계 내부의 복잡함과 정교함 때문에 시계를 설계하고 제작한 이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시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자연에도 설계자 즉 창조주인 신이 개입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페일리의 논법이다.
리차드 도킨스는 그러나 "만약 자연을 설계한 시계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눈먼 시계공'일 것"이라고 반박한다.
실제의 시계공은 미래의 결과를 예상하며 시계를 설계하고 조립한다.
반면 자연을 창조한 시계공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하는 일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진화에서 원시적 생명체가 겪는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변화는 우연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했지만, 그 선택에 따른 변화들이 누적된 결과 지금과 같은 생명체의 복잡성과 완벽함이 나타났다.
저자는 다윈에 의해 주창된 '자연 선택'이 우리 존재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더 나아간다.
세계적인 생물학자답게 저자는 신경생물학과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등을 넘나드는 풍부한 과학적 근거를 예시하며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준다.
생명은 자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창조돼 왔다는 것이다.
1986년에 출간된 '눈먼 시계공'은 1994년 민음사에 의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가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을 통해 재출간됐다.
20년 가까이 된 저술이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최고의 진화론 서적이라는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책은 최초 생명체의 기원을 단순히 우연적인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의문은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다.
'어떻게'는 있지만 '왜?'가 없다.
생물학과 관련된 지식의 진수성찬을 즐겼지만, 결정적 포만감은 없다.
존재론에 대한 의문은 다시 철학적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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