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감성시대. 감성 경영, 감성 리더십, 감성 마케팅…. '차가운 이성'의 시대가 가고 '따뜻한 감성'의 시대가 오면서 감성 능력(EQ)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성들은 예전처럼 여성적인 감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TV 앞에 앉아 순정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며 눈물을 훔쳐도, 이 드라마 주제가를 휴대전화 컬러링 음악으로 설정해도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요리하는 남자, 빨래하는 남자…. 여성적인 집안 일이 오히려 바깥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두 남자의 집을 찾아가 보았다.
# '요리하는 남자' 배진덕 변호사
"요리가 아니라 '반찬'입니다.
남들도 다 하는 건데 별 것 아닙니다.
"
인터뷰할 거리가 못 된다고 몇 차례 사양했지만 배진덕(41·대구시 동변동) 변호사의 취미는 집에서 음식 만들고 애 보는 것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그는 아내 우경미(37)씨 대신 주방으로 들어간다.
뚝딱뚝딱 도마질 소리가 좀 나더니만 어느새 밥상이 차려진다.
"음식 만드는데서부터 다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는데 30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2시간이나 걸리더라구요."
그는 재료를 대충대충 씻어 준비하기 때문에 음식 만드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거라며 웃음지었다.
"제 요리는 대충 해먹는 것이기 때문에 위생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요."
그가 '대구와인클럽' 동호회에 참석하며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도 이런 내용이 눈에 띈다.
그가 와인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음식 만드는 방법들은 따라 하기가 쉬워 여성 회원들이 나중에 해보겠다며 정리해 둘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배추물김치, 계란찜, 북어국, 봄나물 무침, 콩전…. 메뉴도 가지가지다.
계란찜에 대한 그의 글이다.
'통상 아내들이 아침에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내놓으며 아내로서의 사명을 그나마 다 하였다는 조그만 징표로 내놓는 계란찜. 그러나 계란찜은 하는 방법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입니다.
옛날 제 어머니는 밥을 안치고 그 안에 계란 푼 것을 넣어 쪄냈고 제 아내는 계란을 풀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쪄냅니다만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질그릇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계란 푼 것과 같은 양의 물을 질그릇에 넣고 다시마, 멸치 등으로 다시물을 낸 후 건져내고 계란 푼 것(파, 마늘, 소금 간한 것)을 질그릇에 부으며 저어 쪄내면 훨씬 맛있고 졸깃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부인 우씨는 "남편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밖에서의 일을 잊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며 "요즘은 음식을 만드느라 전에 하던 운동도 잘 못 할 정도"라고 했다.
늦게 결혼해 얻은 19개월된 아들 기범이의 재롱을 보며 틈날 때마다 유모차를 끌고 집밖으로 나서는 배씨.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말할 정도인 그는 "요즘 잘 먹고 잘 사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경치 좋은 곳에 작은 식당을 차려 놓고 음식 만들며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 '빨래하는 남자' 곽병진 디자이너
"빨래, 청소, 설거지하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져요. 그래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일부러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걸요."
패션디자이너인 곽병진(34·대구시 신천동) (주)아자리에 대표. 그는 회사에서 디자인실장으로 함께 일하는 아내 이경미(34)씨를 도와주는 측면도 있지만 집안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그리 좋아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집에는 빨래감이 유독 많다.
9개월 된 둘째 딸 민지가 쓰는 천기저귀에다가 첫째 아들 민제(8) 등 네 식구가 벗어 내놓는 빨래감을 주말에 몰아 세탁하려면 그 일이 만만찮다.
그는 7년전 민제가 써서 너덜너덜 낡아진 천기저귀를 애벌빨래해 소금을 약간 넣어 삶으면 살균 표백이 잘 돼 깔끔한 느낌이 든단다.
10층 아파트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 색과 하얗게 펄럭이는 기저귀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감성도 풍부해 질 것 같다고.
"요즘은 귀찮다고 천기저귀를 안 쓰는 집이 많지만, 천기저귀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절약이 되는 부분이 크죠. 옛날보다 세제도 좋고 세탁기도 있으니 빨래하기도 쉽습니다.
천기저귀는 타월로 물기를 닦을 때 등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고 환경오염을 덜 시켜 좋고 아이가 면을 만지니까 촉감도 배울 수 있고 좋은 점이 많습니다.
"
와이셔츠의 때가 잘 빠지지 않는 깃부분 등은 손으로 살살 빨아 세탁기로 약하게 돌려 그늘에 말려야 색이 누렇게 바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뭐니뭐니 해도 청소하기가 가장 쉽다고 한다.
아내가 깔끔한 성격이어서 정리정돈을 잘 해놓아 빠른 시간 안에 청소하기가 쉽기 때문이란다.
"요즘 저와 아내가 다이어트 중이어서 저녁은 야채와 과일로 간단하게 먹습니다.
그러니 저녁 식사 준비가 어려울 것도 없죠. 설거지도 간단하구요."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집안 일을 나눠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는 곽씨. 그의 아들도 주방에서 엄마 심부름을 열심히 하고 바느질로 인형 옷을 만들 정도로 감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남자들이 우는 걸 부끄러워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슬픈 드라마를 보며 코끝이 찡해져 울 수 있는 감성이 있으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표현을 자주 하다 보면 집안 분위기도 더 좋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사진: 30분 내에 음식 만들기부터 설거지까지 끝낼 수 있다는 배진덕 변호사. 일찍 퇴근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 한다. (사진 왼쪽) "빨래하고 나면 기분이 얼마나 개운한데요."디자이너 곽병진씨가 빨래를 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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