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넓은 것이 내 앞에 떨어지네

넓은 것이 내 두 발을 덮네

넓은 것은 하늘 바다 들판

또 강변 모래밭 무릉왕릉 금잔디

넓은 것은 影池의 물밑 그림자

그 흔들리는 침묵

그리고 홀로 서쪽으로 가는 마음, 빈터

넓은 것이 내 앞을 쓸고 있네

넓은 것이 슬픔도 없이 자꾸 퍼지네

넓은 것이 내려앉는 내 마음

나뭇잎 발자국 반 넘어 찼네

넓은 나뭇잎 위에 넓은 나뭇잎으로

천수백 년 전부터 넓은 것이 그런 것이

이진명 '넓은 나뭇잎'

아주 사적인 관점으로 이 시를 읽겠다.

내 시골집 마당 한 가운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오동나무 잎은 하도 넓어서 빈집을 출렁출렁 가득 채우는 듯하다.

송찬호 시인 말대로 오동나무에는 바람이 들어있어서인지 그 넓은 잎은 잠시도 쉬지 않고 '슬픔도 없이 자꾸' 내 앞을 쓸고 허공을 쓸고 저녁노을을 쓸고 있다.

오동나무 넓고 푸른 잎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내 어머니를 느낀다.

어머니 가시고 나는 지금 '홀로 서쪽으로 가는 마음, 빈터', 어머니는 '천수백년 전부터 빈터를 채워주신 넓은 것이 그런 것'이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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