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벌거벗은 여자'

벌거벗은 여자데스몬드 모리스 지음/휴먼 & 북스 펴냄

'수컷'들의 '예쁜 암컷 밝힘증'은 타고 나는 듯하다. 갓난 남자아기들이 미인을 알아보는지에 대한 실험이 미국에서 있었다는 기사를 몇년 전 본 적 있다. 놀랍게도 갓난 남자아기는 미모의 여성 사진에 호감을 갖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호감을 느낄 때 동공이 커지는데, 미모의 여성 사진을 본 남자아기들이 이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커다란 눈동자는 호감을 준다. 만화 속 캐릭터의 주인공이 거의 계란 노른자만한 눈동자를 가진 반면 악당이나 모사꾼의 눈동자가 좁쌀만하게 묘사되는 이유는 인체의 이같은 생리적 반응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털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영국의 동물학자 겸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여자 몸에 관한 동물학적·인류학적 최종 보고서라 할만한 '벌거벗은 여자'(원제 :The Naked Woman)를 최근 냈다. 저자는 여자 몸의 복잡한 원리와 신비,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의 숨겨진 비밀을 특유의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놓는다.

인류의 성(性) 차이는 다른 어떤 종의 수컷과 암컷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보다 크다. 저자에 따르면 남자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체적으로는 어린아이의 특징을 벗어던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형태로 진화해왔다. 반면 여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신체적 특징(고운 피부, 높은 목소리)을 유지하면서도 행동에서는 어린아이의 기질을 일찌감치 벗어던진다.

풍만한 가슴과 매끄럽게 쭉 뻗은 다리·날씬한 허리·탄력있는 엉덩이 등으로 대변되는, 남자들의 성적 환상은 여자의 신체에 대한 인위적 억압을 낳았다. 지금도 매년 200만명에 달하는 어린 소녀들이 성기 할례라는 야만스런 관습으로 고통받고 있다.

잘록한 허리는 성경험 없는 처녀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지난 수 세기 동안 여겨져왔다. 스페인에는 '젊은 여자의 허리가 그레이하운드만큼 가늘어야 한다' 또는 '이상적인 여자의 허리는 해가 비쳐도 그림자가 거의 생기지 않을만큼 얇아야 한다'는 속담도 있었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럽여자들은 수백년 동안 코르셋 등을 동원해 허리를 옥죄었다. 기네스북에는 1929년 24세 때 22인치였던 허리를 1939년 13인치까지 줄인 영국여성의 기록이 나온다.

코르셋은 야만스런 풍속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한 작가는 코르셋을 착용하면 무려 97가지 병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것은 20세기 초 등장한 브래지어와 거들이었다. 브래지어 보급에 크게 기여한 것은 특이하게도 군수산업이었다.

1차세계대전 와중에 미국군수산업연합회는 코르셋 지지대를 만드는데 엄청난 금속이 낭비되는 사실에 경악했다. 협회는 여자들의 코르셋 착용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나중에 연합회는 "이같은 캠페인을 통해 군함 두 척을 건조하기에 충분한 2만8천여t의 금속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낭만스런 동화로 알려진 '신데렐라'는 그러나 여성몸에 대한 야만적이고도 잔인한 학대 코드가 숨어있다. 훗날 디즈니사에 의해 아름답게 각색된 이야기와 달리 원전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왕자가 신부를 구하면서 내 건 조건은 오직 하나, 작은 발이었다. 신데렐라의 배 다른 두 언니는 왕자가 제시한 작은 털 슬리퍼를 신기 위해 각각 발가락과 뒷굽치를 잘라내지만, 흥건한 피 때문에 퇴짜를 맞는다. 발이 원래 작아 슬리퍼가 딱 맞는 신데렐라는 '발 페티시즘 환자'인 왕자의 수줍은 아내가 된다.

작은 발에 대한 야만스런 기호는 중국의 전족 관습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현대에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 신발 디자이너들은 패션에 민감한 여자 고객들을 노리고, 점점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한 신발들을 디자인하고 있다. 명품 신발을 신기 위해 미국의 일부 여성들은 새끼발가락 제거 성형수술이 시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데렐라의 신화는 아직 살아있다.

'벌거벗은 여자'는 여자의 몸을 22개 신체 부위로 나누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탐험해 나간다. 책은 동물행동학적인 측면에서만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으로까지 시야를 넓힌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여자 몸을 둘러싸고 일어난 수천만년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여자의 몸은 가장 정교하고 미묘한 존재로 거듭나게 됐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저자는 여자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진화한 존재이자 아름다운 유기체라고 단언한다.

그의 일곱번째 저서인 이 책은 이번달 영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고 한국어판을 위한 별도의 저자 서문도 실려 있다. 70여컷에 이르는 컬러사진과 상세한 사진 설명도 볼거리이며, 전문서적을 지향하고 있는 책이 아니어서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저자만의 새로운 시각이나 뚜렷한 주제의식이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전작 '털없는 원숭이'보다는 덜 충격적이고 덜 신선하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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