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홀로 서리라

'2004년 ○월 ○일

아침에 병실에 들어서니 할머니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반겨 주신다. 한 시간째 시계만 보고 계셨노라면서…. 이렇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몸담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어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드렸다.'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입원 중인 할머니를 돌봤던 간병사 아줌마의 간병일기 일부분이다.

쪼그라들어 가슴 답답한 가계를 조금이나마 더 윤택하게 꾸리기 위해 안동자활후견기관에서 전문 간병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은 후 생기가 도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이 녹아내려 있음을 엿볼수 있다.

환희와 희망의 빛줄기가 나타나면서 짙게 드리워진 저소득, 아니 무(無)소득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자립의 푸른 신호등을 각박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켠 슬기와 노력의 산물이다.

"몇년 전만해도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화재로 가게를 날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이어 남편과 아이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가슴저미는 기막힌 사연을 한숨에 섞어 토해내는 주부.

"깊은 수렁속에서 시름의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자활후견기관의 도배반은 새 인생으로의 전환점이 된 곳입니다. 처음 도배기술을 배울 때는 '포기할까'하는 망설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의 아픔을 도배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덮어나갔다.

자신의 작은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보고 '내가 할일이 이거구나'하며 충실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몸서리쳐지는, 악몽같은 운명을 딛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깊은 고통과 고난의 터널을 헤치고 힘찬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련이야 물렀거라'하며….자활의 싻을 작은 생활의 변화로부터 틔운 것이다.

코끝이 찡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는 또 있다. "여자라면 늘 접하는 게 청소라서 쉽게 생각했어요. 자활기관의 청소사업팀에 처음 왔을때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기에 무척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청소를 하고나면 내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을 느끼죠." 얼마 안되는 수입이지만 규모있는 살림살이를 꿈꾸며 활기차게 빗자루를 잡는 '억척아줌마'.

평소 어디 상상이라도 했던 일인가? 외면하던 궂은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대변신을 이룬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밝은 내일을 쓸어 담고 있는 것이다.자조(自助)의 힘을 온 몸에서 쏟아지는 땀방울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기초생활도 꾸리기 어려운 빈곤에서, 뜻하지 않은 실직의 굴레에서 벗어나 떳떳한 '홀로 서기'와 당당한'다시 서기'를 하는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다.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과 실직자들에게 인성·기술교육을 통해 경제적인 자립을 유도하고 고용창출을 돕는 '자활후견기관'. 이곳에서는 간병·청소·도배장판·도시락배달 등의 자활관련 교육과 상담으로 자활의욕을 드높이고, 자활공동체를 만들어 청소용역·간병파견·봉제·우렁이농장사업 등을 하고 있다.

앞서의 사례들도 자활후견기관에서 비롯된 감동의 드라마들이다. 실업자를 구제하고 빈곤층의 소득향상을 꾀하는 이곳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자활근로자들을 지원하다보니 월 60만원~80만선의 임금밖에 못줘 일부는 상대적 빈곤감에 자활의욕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자활·자립을 돕는 기관 실무자 대부분이 대학을 나온 사회복지사이나 근속 6, 7년차가 돼도 타직종보다 연봉이 턱없이 낮아 이직률이 높아 업무추진에 애로가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성과급제 도입 등으로 일한 만큼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 자활근로자나 실무자가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마침 오늘 안동에서 한국자활후견기관경북지부 참여자 '자활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18개 시·군 자활실무자 및 근로자 800여명이 모여 윤기나는 가정, 살맛나는 미래를 설계하며 '새 희망만들기'에너지를 충전했다.

자활의 의지를 불태우는 저소득층과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몸바치는 실무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자. 이들이 사회 대통합의 진정한 씨알임을 가슴에 새기면서….

유해석(경북북부지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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