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을 가다보면 애완동물에 옷을 입혀서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펭귄에게 입힐 스웨터가 필요하니 이를 마련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한동안 인터넷에 널리 퍼진 적이 있다.
사연인즉 2000년 1월 호주 남쪽 필립 아일랜드의 해상에서 유조선 사고가 나 원유가 바다에 유출됐는데, 이 때문에 이 섬에 사는 키 작은 펭귄들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원유 유출 사고가 나면 구조대원들이 기름이 묻은 새들이나 다른 동물들을 구해내 원유를 닦아내고 재활과정을 거쳐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펭귄의 반질반질한 깃털은 자연적인 기름으로 덮여 있어서 방수는 물론 차가운 물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유출된 원유 때문에 펭귄 깃털에 원래 있던 기름이 파괴돼 보온효과를 잃는다는 것이다.
또 펭귄들이 부리로 깃털을 다듬는 과정에서 독성이 있는 원유를 조금씩 먹게 되고 이것이 몸속에 쌓여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몸에 맞는 스웨터를 짜서 펭귄에게 입히면 펭귄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원유를 삼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필립 아일랜드 공원 관리자들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그럴듯한 얘기이고, 실제로 펭귄용 스웨터 디자인이 인터넷에 올려지고 전 세계에서 뜨개질된 펭귄 스웨터가 답지하여 이것을 입히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와는 다르다.
펭귄 스웨터가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원유에 찌든 펭귄이 죽게 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한다.
펭귄 깃털은 결에 따라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어야 방수 및 방한 효과를 거두는데, 원유가 묻게 되면 이러한 정돈이 어려워지고, 따라서 펭귄들이 깃털을 다듬는 데 보내는 시간이 먹이를 찾는 데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아져 결국은 탈진해서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웨터를 입혀 놓으면 추위를 막아주는 방한 효과보다는 내부 체온 조절을 어렵게 해 오히려 체온 상승으로 펭귄이 죽게 된다고 한다.
즉 펭귄을 염려하는 호의(good will)가 상식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생각지 못한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정부 정책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갈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경제성장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내수회복을 위해서 금리 인하가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부동산 투기나 물가 상승을 부추기거나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부작용만 키운다는 의견이 있다.
재정확대 정책도 뜻은 이해하지만 재정부담 능력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달러 약세와 맞물려 급속한 원화절상 추세가 이어지면서 외환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이나 신용불량자 해소에 대해서도 뾰족한 묘안이 없어 보인다.
주식시장 등 자본시장 기능 확대를 위한 연기금의 주식 투자 허용을 놓고도 갑론을박이다.
부동산 세제를 둘러 싼 의견대립도 상당하다.
그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각 제안들이 나름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에 대한 다각도에서의 치밀한 조사와 분석 및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 시행의 동기가 비록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현상 개선의 단기적 처방에 불과할 뿐 근본적 해결에 미치지 못하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필립 아일랜드의 '펭귄 스웨터'는 어떻게 보면 해결 방법의 오류가 미치는 영향이 한정적이다.
그러나 경제 정책은 그 영향이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경제 활동에까지 미치게 된다.
경제주체들의 자원 배분 의사 결정이나 경제의 구조적 효율성 등이 이들 정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정책들이 일견 타당하지만 기대하는 효과와는 거리가 먼 '펭귄 스웨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진단한 처방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필요한 시기이다.정해왕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