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없으면 농구 경기도 없어요. ^^"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치어리더의 현란한 춤, 정신을 뺏는 시끄러운 음향 소리….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가 홈에서 경기를 치르는 날이면 대구체육관(대구 산격동)은 잠에서 깨어난다.
적막감에 싸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경기장은 관중들과 선수들의 환호와 쏟아지는 땀방울에 덩달아 신이 난다.
이 때만큼은 사람 냄새에 흠뻑 젖어있다.
TV 시청자나 관중들은 코트에서 땀흘리는 선수, 율동으로 흥을 돋우는 치어리더, 눈길을 끄는 이벤트 등에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 뒤에는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한 이들이 있다.
경기장 안전관리요원과 경기 기록원, 경기 진행보조요원 등이 그들이다.
숨어있는 이들의 세계를 찾았다.
△안전관리요원
대구체육관에 도착하면 관중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이가 바로 안전관리요원들이다.
이들은 체육관 주차장 정문에 버티고(?) 서서 차량을 일일이 확인한 뒤 선별 출입시킨다.
또 경기가 시작되면 20여명의 안전관리요원들이 출입구마다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건물관리, 인력파견, 안전관리, 이벤트 등을 주 업무로 하는 (주)팔공 직원들이다.
농구장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시즌에는 야구장에서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농구장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하는 안전관리요원들은 경기장내 취약 지역 확인, 코트 주변 안전 차단봉 설치 등 선수들이 안전하게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만들어간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이동을 위해 버스에 타기전까지 모든 안전은 이들이 책임진다.
열성 여고생팬들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도 큰 임무다.
검은 양복을 입은 채 무전기를 이용해 속닥이는 안전관리요원들을 보면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정작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친철이다.
10년째 이 업무를 하고 있는 김철민(36) 대장은 "남을 제압하는 힘보다는 관중들의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할 수 있는 친절을 가장 우선시한다"며 "친절하게 대하면 까다로운 관중들도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과 10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는 농구 선수 출신의 이상홍(34) 실장은 "10년 넘게 이 일을 하다보니까 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 관록이 붙은 것 같다"며 내공을 자랑했다.
△기록원
기록원이 없으면 코트 위에서 펼치는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도 무의미하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실책 등 선수들의 각종 기록을 꼼꼼히 체크해 개인 성적을 내는 것이 이들의 주 임무이기 때문.
기록원은 통계와 순수 기록으로 나눠져 있고 총 8명이다.
통계는 또다시 수기록과 전산기록으로 업무가 분할되고 순수 기록은 전광판, 24초, 기록보조 등을 맡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공격 제한 시간인 24초 담당 기록원.
공·수가 바뀔 때, 슛이 빗나갈 때, 파울 등으로 경기가 중단될 때마다 기계를 정지시켰다가 속개되면 곧바로 초시계를 작동시킨다.
정말 단 0.1초도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다른 기록의 경우 이후에도 수정이 가능하지만 24초는 한 번 실수하면 경기를 멈춰야 한다.
업무를 감안해 일당도 가장 많다.
24초를 담당하고 있는 서준혁(33·대구 황금동)씨는 한때 여자실업농구 심판을 맡기도 했다.
컴퓨터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서씨는 프로농구가 시작하는 겨울이면 투잡(two job)족이 된다.
서씨는 "볼이 림을 맞아야 다시 초시계를 작동시키는데 때론 림을 맞았는지 안맞았는지가 불분명해 정말 곤혹스럽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비득점(리바운드, 어시스트) 수기록을 담당하는 김민석(23·대구 만촌3동)씨도 역시 심판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중3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는 김씨는 "관중들은 슛의 결과만 보지만 기록을 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슛이 들어가는 과정을 더욱 유심히 보게 된다"고 말했다.
△진행보조요원들
경기 진행보조요원들은 경기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길다.
경기가 열리는 날 이들은 오전 9시까지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간다.
아르바이트생 4명과 팀장 1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진행 보조요원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데 문제가 없도록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는다.
경기장내 청소, 각종 물품관리, 테이블설치, 이벤트에 사용될 물품 정리, 선수 휴게실 청소, 기록지 배포 등이 이들의 일. 이 때문에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특히 오후에 열리는 주말 경기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권대호(21·대구 산격동) 팀장은 4년전부터 이일을 시작했다.
농구를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 처음 2년 동안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다가 지금은 오리온스의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한다.
권씨의 장래 희망은 프로농구 프런트 직원. 권씨는 "이 일을 하다보니까 프런트 직원이 멋있어 보였다"며 "오리온스가 승리하면 힘들었던 것이 싹 가시고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경기 도중 대걸레로 선수들이 흘린 땀을 닦는 것이 주 임무인 휴학생 이상훈(20·대구 본동)씨는 마냥 신난다.
선수들 옆에서 좋아하는 농구를 실컷 볼 수 있기 때문. 내년 군에 입대하는 이씨는 "TV로 농구 중계를 보던 친구들이 대걸레로 코트를 닦는 것을 보고 아는 체하기도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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