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함께살기-의지할 곳 없는 김입분 할머니

"몸에 수술자국 투성인디···. 이제 몸에 칼을 대는 게 죽기보다 싫다카이."

2평도 채 안되는 골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오늘도 쑤시는 무릎을 주무르고 있었다.

60여년을 살면서 수술을 14차례나 받았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찬바람이라도 불 때면 마디마디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이쁜이 할머니'라고 더 많이 불리는 김입분(66·서구 비산5동) 할머니는 온 몸에 남아있는 수술자국만큼 마음 상처도 또한 많았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아들 셋이 다 땅에 묻혔어. 지 애미보다 먼저 간 불효자식들···. 난 가슴에 그 애들을 하나하나 묻었는데 어찌나 무겁던지 결국 다 도려냈던거여."

김 할머니는 양쪽 가슴이 없다.

20여년 전 아들 삼형제를 땅에 묻은 뒤부터 가슴에 망울이 맺히더니 결국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여자의 삶,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삶은 그 때 끝났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어느 새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낭랑 18세'에 할머니는 시집을 갔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생각만큼 행복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할아버지의 모진 매를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왔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들 셋을 업고 끌며 뛰쳐나올 때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스물 여덟 그 꽃다운 나이에 식당에서 음식배달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하지만 행복과는 별로 친해질 수 없는 팔자(?)였던 모양이다.

자식이라는 짐은 비록 무거워 보이지만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이 바로 희망이자 고통의 대가였다.

그렇게 자신의 몸도 한번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일만 했던 할머니는 어느 화창한 오후 음식 배달을 나가다 마주 오던 트럭에 부딪혔다.

왼쪽 허벅지 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고 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고정시켜둔 '심'이 다 부서지는 바람에 지금은 허벅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멀쩡한 몸 속에 쇠붙이가 돌아다니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오른쪽 다리만 쓰다보니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없어졌다카데. 조금씩 뼈를 잘라내는 바람에 왼쪽 다리가 반뼘 정도 짧아졌어. 시장에 나갈라구 일어섰다가도 주저앉고, 또 맘 먹었다가도 포기하고…."

거동이 힘들다보니 할머니는 많은 병을 얻었다.

대소변을 방안에서 처리하는지라 자주 못 봐서인지 담석이 생겼고, 두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또 대장이 꼬여서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결국 너무 고통스러워 항문수술까지 받았다.

왼쪽 다리 수술만 8차례. 가슴, 배, 엉덩이, 오른쪽 다리 수술. 이제는 배에 가스가 차 늘 속이 더부룩하다는 할머니는 병원의 약품냄새와 주사기, 수술가운과 메스만 보면 지긋지긋하다.

할머니는 4가지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독한 약 때문에 위가 헐어버려 지금은 위장약만 먹고 있다.

"앉아서 마늘을 까면 한달에 7만원 정도 벌 수 있어. 근데 마늘독이 올라 손이 간지럽고 손톱이 빠져. 지금은 그 일도 쉬고 있지. 이젠 아무래도 죽는 게 편할 것 같아…."

습한 공기과 곰팡이, 마늘향이 가득 배인 할머니의 작은 반지하 단칸방. 장마철 들어오는 빗물을 퍼내다 지쳐 잠든 적도 있다는 '이쁜이 할머니'. 그 작은 방 한칸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건 할머니의 한 서린 숨결이었다.

"다리만 나으면 말이야 김천 구암동에 묻혀 있는 아들들을 꼭 한번 만나고 싶네." 할머니는 그 소망을 꼭 이루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함께살기'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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