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천 수백년 동안 한반도와 교류하면서 때로는 연맹을 맺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가져온 일본. 그러나 진자(神社) 참배, 사무라이 정신, 천왕체제로 대표되는 그들의 내밀한 의식세계와 생활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일본의 토속신앙과 종교, 전통 축제,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세대간 갈등문제 등 일본인들의 삶과 풍속을 짚어본다.
일본에서 일곱번째로 큰 호수, 신지코(肉道湖). 동해에 접한 혼슈(本州) 시마네(島根)현 마쓰에(松江)시에 자리잡은 이 호수 안의 길이 240m의 섬, 요메(가)시마(嫁島)에는 자그마한 진자(神社)가 있다.
물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신지코 주변에서 보면 섬 입구에 놓여있는 출입문이 희미하게 보인다.
신의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 도리이(鳥居)다.
신지코 주변에는 이 섬과 도리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처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섬을 향해 정성을 다해 빌면 시집을 잘 갈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먼 옛날 어느 겨울, 갓 시집온 며느리가 언 호수 위를 건너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 속에 빠져 죽었다.
이후 신지코의 여신이 호수에 빠져죽은 젊은 며느리를 건져 올렸고, 그 자리가 바로 요메가시마라는 슬픈 전설이다.
요메가시마 진자는 바로 그 여신과 죽은 며느리를 모신 곳이다.
돗도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의 조그마한 마을에는 낙지신을 모신 진자가 있다.
여기에는 옛날 동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빠진 어부들을 낙지가 구해줬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5월이면 전통의상을 입고 낙지처럼 몸을 배배 꼬며 춤을 추는 낙지축제를 벌인다.
또 이 마을 인근에는 일본 전역을 비롯해 세계의 귀신 인형을 모아두고 전시하는 오니(鬼)박물관도 있다.
여신과 낙지뿐 아니라 돌을 모신 진자도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코(琵琶湖)가 있는 시가(滋賀)현 쿠사츠(草津)시의 아나무라(穴村)에 강돌 10여개를 모신 '아라진자'가 그것이다.
100여 가구의 마을 사람들은 이 강돌을 신처럼 모시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권력투쟁에서 밀린 신라의 한 왕자 '아메니 히보코'가 600년대 시종 수명을 데리고 일본 열도로 건너갔고, 이 과정에서 아라가야(경남 함안) 출신 시종 1명이 이 마을에서 강돌을 데워 병든 사람들을 치료했다는 것.
시마네현 이즈모(出雲)시에 위치한 일본 최대 규모의 진자, 이즈모 타이샤(大社). 일본 건국신화의 주인공이자,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한 후손을 모신 곳이다.
이즈모의 상당수 사람들은 이 진자를 중심으로 고대 일본의 첫 왕국이 이즈모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다.
이즈모 지방에서 또 다른 유명한 신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다른 후손, 스사노오노 미코토라는 신이다.
그는 각각 여덟개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이무기(야마타노 오로치)가 아름다운 여인(이나타히메)을 잡아 먹으려 할 때 술을 먹여 퇴치했다는 신이다.
일본의 '칠복신'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신이다.
7가지 복을 준다는 칠복신. 각각 다른 모습으로 진자나 절, 여관, 가정집마다 종종 눈에 띈다.
돈을 벌게 해주고, 오래 살게 해주고, 쌀과 음식을 가져다 주고, 아기를 낳게 해준다는 신 등등이다.
일본에는 이처럼 온갖 잡신들이 우글거린다.
특히 고대 일본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이즈모 지방에는 매년 10월 전국의 신들이 모두 모인다고 해 10월은 '신이 있는 달', 가미아리즈키(神在月)로 불리운다.
한달 동안 이즈모에는 온갖 신들이 득실거리는 '귀신들의 천국'인 셈이다.
이 때는 이즈모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이즈모의 진자 등지에 몰려 신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빌며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이 달은 '신이 없는 달', 간나즈키(神無月)이다.
일본의 각 마을마다 도시마다 그 지역에 전해지는 잡신들을 모시는 '진토(神道)'는 일본 고유의 토속신앙으로 꼽을 수 있다.
진자는 바로 이 잡신들을 모신 진토 특유의 건축물이다.
일본인이 모시는 신은 줄잡아 2천종이 넘고, 일본 전역에 있는 진자 수만 8만6천여개에 이른다.
이처럼 진토는 일본인 절대 다수의 마음 속에 뿌리깊이 스며있는 믿음이지만, 진토를 하나의 종교로 부르기엔 무리다.
진토는 국가의 보장아래 한때 국교로까지 발전했지만, 2차대전 이후 점령군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국교로서의 운명을 다했다.
현재 일반인은 물론 불교신자도, 기독교신자도 모두 진자에 다니는 데다 상당수 일본인들이 진토를 종교라기보다 일상생활 속의 한 문화로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일본인 1억2천여만명 중 1억1천여만명이 진자에 정기적으로 드나들고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진토 중에서도 국가나 왕실의 역사와 관련된 진토는 특정 종교인 '니혼진교(日本神敎)'로 볼 수 있다.
대다수 진토는 씨족신과 고장의 수호신을 섬긴다는 의미에서 토속신앙으로 볼 수 있지만, 니혼진교는 비록 소수이지만 일본의 전통 종교로 꼽을 수 있다.
니혼진교의 신자들은 불교 경전과 마찬가지로 건국신화와 관련된 얘기를 특정 경전으로 만들어 정기 모임에서 불경을 외듯 소리높여 복창하고 있다.
일본 건국신화의 여주인공을 모신 미에(三重)현의 이세진구(伊勢神宮), 그 후손을 모신 이즈모타이샤,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비롯해 호국의 신을 모신 야스쿠니(靖國) 진자 등은 다른 진자와 달리 일본 왕실이나 국가에서 재정적, 정치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총리가 해마다 참배해 말썽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 진자는 메이지(明治) 유신 2년(1869)에 창건된 것으로, 주로 전쟁에서 죽은 혼을 기리고 있다.
당초 도쿠가와 막부에서 메이지 시대로 전환될 당시 개국파와 쇄국파 사이의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모신 '도쿄 초혼사'로 출발, 1879년 야스쿠니 진자로 개명했다.
이후 2차대전 1급 전범들의 위패를 함께 보태면서 총리 참배 등과 관련, 한·일, 한·중간 외교적 불화를 빚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진자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무 진자에서 무턱대고 참배하거나 그들의 의식을 따르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진토가 일본 전통 샤머니즘에다 유교와 불교의 영향이 버무러진 토속신앙이라면, 일본 불교는 538년 인도로부터 중국과 한국을 거쳐 유입된 뒤 나름대로 '만인의 극랑왕생'을 설교하며 상당한 위치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의 절이 전국적으로 8만여개에 달하고, 불교신자가 8천900여만명이란 점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일본인들의 종교적 색채가 엷은 데다 불교 교파도 약 224개나 난립해 사회적·정치적 권력은 크지 않은 편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의 신앙은 다음 말로 압축될 수 있다.
'일본인은 태어날 때 진자에 찾아가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을 찾으며, 죽고 난 후에는 절로 간다.
'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사진: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일본 건국신화 관련 신을 모신 이즈모타이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