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가 찾아왔다. 아득한 시베리아에서 시린 북풍에 몸을 싣고 남하한 철새가 우리 땅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한반도는 이런 철새들의 지친 날개를 접고 숨을 고르는 쉼터. 요즘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 가면 철새들의 지껄이는 소리, 날개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가족과 함께, 또는 연인끼리 탐조여행을 떠나보자.
주남저수지 탐조여행은 동판저수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동판저수지는 태고적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다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어 탐조객들이 많이 찾지 않은 곳이기도 하지만 먹잇감이 풍부해 새들도 주남에 비해 훨씬 많다.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저수지 가장자리에서 수초 뿌리를 쪼아 먹던 기러기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오른다. 혼자가 아니다. 떼를 지어 날아오른다. 꽁무니를 치켜들고 자맥질을 하던 청둥오리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물고기를 낚던 고방오리도 덩달아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순식간에 저수지가 시끄러워진다.
행동이 가장 느린 녀석은 긴 몸을 자랑하며 유유자적 떠다니는 큰고니. 몸이 워낙 거구라 한번에 날아오르지 못한다. 수면을 20~30m쯤 달리다 겨우 추진력을 얻어 비상하는 모습은 작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장관이다.
날이 밝으면서 저수지의 윤곽이 드러난다. 가창오리떼의 놀이터인 동판저수지는 겨울 낭만이 물씬 묻어나는 호수다. 겨울 저수지의 색다른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물가에 늘어진 갯버들을 비롯해 왕버들, 호랑버들이 탐조객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일출이나 일몰 무렵, 버드나무와 새가 어우러져 연출되는 '어스름 풍광'은 데이트와 사진 촬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동탄저수지에서 주남저수지로 옮겼다. 주남저수지에서 철새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전망대가 위치한 둑길이다. 갈잎 서걱거리는 둑길은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다. 고배율의 망원경을 갖춘 전망대에 오르면 주남저수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닭과 흰죽지, 고방오리가 많다. 청둥오리, 가창오리도 보이고, 원앙이도 간간이 발견된다. 특히 온몸이 검정색이며 흰색 이마가 돋보이는 물닭이 많다. 갈대밭 옆으로 청둥오리가 자맥질한다. 먹잇감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얼굴을 들이미니 자연히 다리가 위로 올라간다. 오리들이 연출하는 싱크로나이즈드 수위밍이다.
창원에서 철새 견학을 온 김도헌(5)군은 "새가 날아다니지 않고 물위에 떠 있는 것이 신기하다"며 "헤엄치기도 하고 물속으로 쳐박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다"며 새들의 물놀이에 넋이 빠졌다.
조용하던 저수지에 갑자기 파문이 일었다. 새들이 도망가듯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수분 후 굉음을 우리며 고깃배가 나타났다. 그냥 고깃배가 아닌 동력선이다. 위협을 느낀 새들이 벌써 알고 자리를 피한 것이다.
경남 창원시 동읍에 위치한 주남저수지. 낙동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자연습지다. 통상적으로 주남저수지라고 하면 주남은 물론 남쪽의 동판저수지와 북쪽의 산남저수지까지 포괄한다. 규모만 180만여평이나 달한다.
주남의 장점은 여타 지역과는 달리 한자리에서 여러 종류의 새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빼어난 탐조조건을 갖춘 철새도래지다. 실제로 전망대 주변 논길을 따라 걸으면서 망원경으로 가깝게 철새를 구경할 수 있어 초보자들의 탐조코스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11월 하순 현재 개체수는 3만 마리 정도. 지난 10월 말과 11월 초엔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도 관찰되었다. 그러나 지난 15일부터 저수지에 고기잡이가 시작된 후로는 개체수가 다소 줄었다.
겨울을 보내기 위해 주남을 찾은 철새는 이곳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30~50km 떨어진 낙동강하구와 창녕 우포늪을 오가며 겨울을 난다. 날씨가 좋으면 동틀 무렵이나 해질 무렵 철새들의 에어쇼를 볼 수 있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탐조 요령
탐조여행을 나설 때 가장 주의해야 한 것은 철새들의 생활을 방해하거나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복장도 신경 써야 할 부분. 눈에 잘 띄는 붉은 색과 흰색 계통의 옷은 피하고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수수한 복장이 무난하다. 주남저수지는 갈대가 많으므로 갈색계열이 좋다. 또 새들은 후각이 예민해 진한 향수나 화장품도 피해야 한다.
준비물로는 망원경과 조류도감 등이 필요하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는 배율 10배 이하의 쌍안경이, 접근이 곤란한 장소에서는 20~25배율의 망원경이 적당하다. 새를 관찰하면서 조류도감을 같이 펼쳐보면 보다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간단한 수첩이나 필기구를 갖고 아이들과 함께 떠난다면 훌륭한 자연학습도 된다.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남해고속도로 진입해 동창원IC로 빠져나온다. 다시 국도를 타고 창원 방면으로 1.5km 가량 가다보면 동읍삼거리와 만난다. 우회전한 뒤 30번 국도를 따라 3km 가다보면 오른편으로 동판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끼로 우회전하면 주남저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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