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버배우 전성시대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는 TV드라마에서 연륜과 경험을 수혈받으며 관객이 사랑할 수 있는 또다른 매력을 만들어왔다.

충무로의 젊은 감독들은 하나같이 TV드라마의 관록있는 연기자들을 '무한한 금광'으로 표현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매일 브라운관에서 보면서 너무 쉽게 여겨서 그렇지 그분들의 연기력은 엄청나다.

캐릭터를 어떻게 재미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정도.

특히 2004년 우리 영화계는 이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 한해로 기억될 듯하다.

주연급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57세로 꾸려졌던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이수인 감독)가 개봉하더니, 최근 오지명 감독의 충무로 입성작 '까불지마'에는 오지명, 최불암, 노주현이 함께 출연하는 등 이른바 '실버배우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연말 각종 영화제에서도 결실을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있었던 제25회 청룡영화제와 5일 있을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중견 배우들의 이름이 대거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 단연 눈에 띄는 이름은 데뷔 이후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김해숙(49)과 고두심(53), 그리고 백윤식(57)이다.

요즘 그녀가 나오지 않는 TV드라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주가가 급등한 김해숙은 원빈, 신하균 주연의 '우리 형'(안권태 감독)에서 열연하면서 영화계에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이미숙, 김혜수, 전도연, 강혜정과 함께 당당히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영광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고, 청룡영화제에서는 염정아, 엄지원, 추상미와 나란히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고두심도 중견 배우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연기 인생 32년 만에 영화 '먼길'(구성주 감독)에서 첫 주연을 맡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억척스런 이 시대 모든 엄마이자 아줌마로 변신했던 '인어공주'(박흥식 감독)로 김해숙과 함께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영화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감독)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휩쓸었던 백윤식은 이번엔 주연상마저 거머쥘 태세다.

'범죄의 재구성'(최동훈 감독)에서 박신양과 화면에 꽉 차는 연기 대결을 펼쳤던 그가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박신양을 제치고 주연상 후보에 당당히 노미네이트돼 젊은 톱배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이 밖에도 대한민국 영화대상의 여우조연상 후보로 '꽃피는 봄이 오면'(류장하 감독)의 윤여정과 '위대한 유산'(오상훈 감독)의 김수미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바람에 '올드보이'(박찬욱 감독)의 윤진서와 '거미숲'(송일곤 감독)의 강경헌의 이름이 중견배우들의 그늘에 가린 느낌이다.

비록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가족'(이정철 감독)의 주현은 걸출한 연기로 영화를 살렸고, 최근 '발레교습소'(변영주 감독)로 돌아온 70년대 얄개스타 진유영의 얼굴도 반갑다.

갑신년 한국영화계는 탄탄한 연기력을 무기로 한 중견 배우들의 엄청난 기세로 마무리될 듯한 느낌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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