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철밥통' 공기관도 '서비스시대'

'고객경영' 공공부문 화두…생존경쟁 치열

'중소기업이 있어야 신용보증기금이 존재할 수 있다'(신용보증기금), '고객이 만족해야 직원이 만족한다'(국민연금관리공단),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한국정보보호진흥원).

고객 경영이 공공부문 혁신의 화두로 등장했다.

문턱 높던 국책 금융기관, '준공무원'의 혜택을 누리며 철밥통으로 불려온 정부 산하기관과 정부 투자·출연기관들이 거센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민간기업과의 경쟁으로 그동안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공공부문에서도 고객만족이 최우선 경영목표가 된 것이다.

'고객만족'은 법적으로도 공공기관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4월 '정부 산하 기관 관리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연1회 고객만족도 조사를 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사를 주간사로 이번 달부터 내년 2월까지 전 정부산하기관에 대한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국무총리실에서 98년부터 정부부처에 대한 국민만족도조사를 실시해왔고 기획예산처도 일부 기관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조사를 해왔지만 전 기관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결과는 내년 4월 경영실적과 맞물려 기관평가로 직결되기 때문에 전 공공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정부가 실시한 몇 차례 고객만족도조사에서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어느 기관 CEO가 기획조정실 직원들을 모두 인사조치했다는 사례도 있다.

#사례1

'고객이 있기에 신보가 있고 신보인이 있다.'

중소기업 여신 전문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사장 배영식)은 11월 한국능률협회로부터 '대한민국 고객만족경영대상 서비스혁신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설픈 중소기업은 문턱 넘기가 어렵다던 신보가 중소기업을 먼저 생각하는 고객친화적 전문 여신기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신보가 공기업 경영혁신의 선두주자로 꼽히게 된 것은 배 이사장이 취임한 이후다. 2002년부터 'We Partner'캠페인을 통해 중소기업 입장에 선 업무혁신을 추진했다.

그 첫 결실이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수수료를 신용카드로 받도록 한 것. 그러나 담당자는 "답답한 쪽은 중소기업인데 왜 우리가 나서서 카드 수수료까지 물어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신보는 중소기업의 기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국책기관인데 중소기업 입장에서 제도를 바꿔보자"고 설득했지만 담당자는 고집을 부렸다.

배 이사장은 인사조치를 통해 고객서비스를 실천했다. 권위주의와 관행을 내세우면서 고객을 외면하는 직원은 필요 없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보증료 등의 신용카드 수납제는 금융기관 사상 처음이었다.

신보의 고객중심은 보증업무의 전자화, 금융기관 방문만으로 보증지원이 가능한 '금융기관 협약 신속보증제도' 등의 제도적 개선은 물론 주차시설이 부족한 영업점의 경우 인근 유료주차장 비용을 대신 부담해 주거나 전 영업점에 고객용 PC를 설치한 것 등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사례2

'신용불량자는 우리의 소중한 고객이다.'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채권추심을 맡고 있는 카드회사나 빚 독촉기관의 구호가 아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경영모토다.

KAMCO가 가계부실채권을 대량 인수하기 시작한 것은 신용카드로 인한 가계부실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였다. 2002년 6월까지 30여만명의 개인채무자를 관리하던 KAMCO는 2004년 120만여명을 관리해야 했다. 채무자들 상황이 다른데다 업무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KAMCO로서는 신용카드 채권추심문제로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무자를 회유하거나 윽박지르고 하물며 협박까지 하는 채권추심업무에 익숙해 있던 직원들에게 신용불량자를 고객으로 대하라는 경영지침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나 '신용불량자가 없으면 우리의 급여도 없다. 그러므로 신용불량자는 우리의 고객이다'라는 다소 직설적인 논리는 조금씩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공사는 빚독촉이 아니라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동시에 제시했다. 온라인으로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온크레딧 서비스'를 개통하면서 KAMCO는 신용불량자들의 신용회복지원기관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KAMCO는 2004년 한국윤리경영대상 공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사례3

97년 4월 이전까지 정기 자동차 검사때가 되면 적지않은 사람들이 카센터 등에 위탁검사를 맡겼다.

직접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겪게 되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 검사는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 검사소에서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두세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불편함은 운전자들에게 자동차 검사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97년 민간정비업소에서도 자동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완전경쟁체제가 도입되면서 교통공단 독점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해 공단의 자동차 검사수입은 1백억원이나 감소했다. 교통안전분담금마저 폐지되면서 공단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교통안전공단이 생존전략으로 채택한 것이 '고객감동서비스'와 구조조정이었다.

고객서비스의 첫발은 친절이다. 여성들에게는 성역이었던 검사원에 여성검사원 두명을 채용한 것을 시작으로 친절서비스가 몸에 배기 시작했고 검사소의 환경도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바꾸는 등 모든 것을 고객위주로 탈바꿈시켰다. 민간검사소에서는 해주지 않는 전구교환 등 경미한 불합격 사항은 현장에서 즉각 서비스해 주고 있다. 이제 고객들은 휴식공간에서 차를 들고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대기하면 검사를 마칠 수 있다.

#사례4

한국전력공사는 전체고객의 80%에 해당하는 주택용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넷에서 신용카드로 24시간 전기요금을 수납하고 있다. 또한 청구서를 분실했을 경우 고객이 사업소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한전에서 지정한 가상계좌(VAS)로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고객위주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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