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건 드물다. 받고 싶고 주고 싶은 게 있으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포장을 뜯는 재미도 어떤가. 꽃 한 송이가 아내나 연인의 얼굴을 꽃처럼 피어오르게 한다. 내의 한 벌에 부모는 자식을 둔 보람과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이같이 선물은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끼리 주고받을 때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조금 주고 많이 받겠다는 계산이 들어 있는 일종의 '투자'일 수도 있다.
○...일찍이 다산(茶山)은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이반(民心離反)"이라 했다.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이며, 가장 고약한 부정부패는 백성들을 들볶아서 뇌물을 챙기는 행위라는 개탄이었다. 1999년 우리나라에는 이를 막기 위한 '공무원 10대 준수 사항'이 제정됐는가 하면 '부정부패방지위원회'도 생겼다.
○...최근 이해찬 국무총리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우리 농산물을 연말연시 직원 격려 선물로 적극 활용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부패방지위원회는 어제 '3만원 한도 내의 음식물 제공'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공무원이 상급자에겐 이 범위 안에서, 상급자가 부하에겐 지나친 고가 선물 외엔 제한이 없는 소위 '제한적 허용'인 셈이다.
○...부방위는 또 "공무원이 친구나 지인(知人), 친척과 동료 공무원 등 직무 관련자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경우 상한선이 없다"고 했다. 다만 공무원으로서의 청렴성과 품위 유지 의무는 지켜야 한다는 선을 그어놓았다. 다산이 살던 시대에 '가렴주구(苛斂誅求)' 때문에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귤나무를 뽑아버릴 정도였으며, 그의 갖가지 방안은 무색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 건 '왜'일까.
○...달리 말해 보지만, 선물은 받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자주 생각한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신(神)까지도 미혹시킬 수 있는 게 선물이다. 부방위의 이번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달갑지만 않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기우이기만 할까. 영어로 '선물'은 'gift'지만 같은 단어가 독일어로는 '독약'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선물'과 '독약'을 구별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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