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삶의 고향이고, 역사의 무대입니다. 또 휴일이면 수백만 도시민이 산을 찾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각종 개발 명목으로 산은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미래요, 생명의 원천인 산과 숲을 단지 개발 대상으로 여겨서 무참하게 파괴하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장관에서 NGO 활동가로 변신한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한국산지보전협회장'중앙대 교수)이 지난 30일 대구에서 열린 영남산지보존협회(회장 홍성천 경북대 교수) 개소식에 참석했다.
◆ 전후 녹화에 성공한 자부심은 어디에
김 회장은 "한국은 종전 이후 독일과 함께 가장 녹화사업을 잘한 나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선정되기도 했지만 근년들어 해마다 서울 남산의 30배나 되는 면적이 깎여나가고 있다"면서 무턱댄 개발이 산사태, 토사붕괴, 폭우와 홍수, 대기오염 등의 재해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태풍 매미 때 대구 달성공단에서도 홍수와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 2500 트럭 분량의 엄청난 돌과 흙더미가 인근 공장을 덮치고 멀리 떨어진 도로까지 굴러가 처박히는 끔찍한 재해가 터지기도 했다. 이런 재해성 이상기후를 겪은 곳은 대구 뿐만 아니다.
◆ 인간의 예측은 한계가 있어
"세계개발은행(IBRD)이 영산강 하구언을 만들 때(1987년) 백년에 한번 쏟아질 강우량(하루 200mm)까지 대비했었는데 작년 태풍 매미 때는 하루 28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올해는 하루에 380mm까지 내렸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자연변화 예측을 백년은커녕 20년도 하지 못하면서 산허리를 마구 잘라내고 숲을 베어내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국토의 64%가 산지이면서도 이를 보전하려는 노력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남북부를 관통하는 유명한 '흑림'(黑林)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조성된 것인데, 수많은 개발론자들이 흑림을 헐고 대운동장을 짓자, 골프장을 짓자고 했지만 독일 국민들은 보존을 택했다. 흑림 밑을 흐르면서 자연정화된 청정지하수는 독일민들의 생명수이기도 하다.
◆ 대구시민의 팔공산 사랑 돋보여
"인구 250만명을 넘어선 대구가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려면 반드시 녹색지대가 있어야 합니다. 국제적인 도시치고 녹색지대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만 대구는 계획개발된 도시가 아니어서 녹색지대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팔공산이 대표적인 녹지인데, 대도시인 대구쪽의 팔공산이 다른쪽보다 더 잘 보존돼있어서 대구시민의 팔공산 사랑이 상당히 돋보입니다."
김 회장은 "대부분 도시인접 산의 경우 대도시쪽이 더 많이 훼손되는데, 팔공산의 경우 대구시쪽보다 개발욕구에 사로잡힌 인접 시군의 난개발이 매우 문제"라고 말한다. 중앙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든 팔공산 녹지만은 지역민이 지켜나가려는 각오가 필요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노린 개발이 결코 우리에게 삶의 질을 높이거나 더 나은 대가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대구 경북에 제2 국립수목원 세워야
"탄핵기간 중에 노무현 대통령도 광릉 국립수목원을 찾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제2, 제3, 제4의 국립수목원을 세워서 식물종의 유전자도 보호하고 산지보존의 중요성도 알려야 할 때입니다."
IMF때 광릉 국립수목원과 숲가꾸기 공공근로를 탄생시켜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김 회장은 "영남이 강원도보다 산지가 더 크다"며 "광릉에 이어 경북에 제2 국립수목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북에 제2 국립수목원이 들어서고 나면 그다음에 서남해안, 강원도에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
◆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29조원
"6'25로 잿더미로 변한 산하에 일본의 ½, 독일의 ¼까지 산림이 우거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산주(전국 21만7천가구, 대구 2만1천명, 경북 1만3천846호)들의 수고가 컸다"는 김 회장은 이제 국가와 시민이 산림과 산주 임업인에게 보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매일 공짜로 즐기는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29조원이고, 연간 수백만명이 국립공원을 찾는데 국립공원의 30% 이상이 사유지이나 산주들은 자기 산림에서 나무 열매나 따고, 버섯이나 재배할 뿐 실질적인 영업을 할 수 없다. 공원 입장료는 정부가 걷고, 산림보험도 되지 않아 산불이 수십년 가꾼 나무를 일순간에 다 날려버린다.
"산과 함께 사는 산주와 산촌사람들이 산림복합경영이든, 산림축산이든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세워주어야 하고, 진짜로 산을 보전하고 가꾸는 사람에게는 산림직불제를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은 현재 8천억원에 불과한 예산을 1조 내지 1조5천억원까지 끌어올리고, 산림청을 임업부로 격상시켜서 산의 나라인 우리나라를 영원토록 발전시킬 밑거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
버버리코트에 모자를 즐겨쓰는 김 전 장관은 금연이 시대적인 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휴대용 재떨이'까지 들고 다니는 연유를 묻자 "장관 재임시 어려움을 호소하러 상경한 봉화의 한 담배재배 농민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담배를 피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농업문제전문가인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산지보전협회를 비롯해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운동 대표, 경실련대표,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 대표를 맡아 하루 24시가 짧다.
최미화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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