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짱' 주부 이영미의 요리 세상-굴야채죽

1년 중 11월을 '단정한 계절'이라는 특별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가장 좋아했었는데 올 11월은 내게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학교 업무 중 11월 30일까지 보고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벅찼던 모양이다.

능력은 안 되는데 심리적인 부담감은 너무나 컸었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내가 책을 내고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 일을 하는 등, 선생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많으신가 보죠? 아이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그런 일까지 하는 것을 보니…."

"선생이 학생들 잘 가르치는 데 온 신경을 써야지…, 이것저것 하다 보면 당연히 한쪽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친정 어머니 늘 부탁하시는 말씀.

"옛말에 우리 집에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보다 남의 집 소가 죽으면 더 기쁘다는 말이 있다.

살아보니 틀린 말 아니더라.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가 쉽지 않더라는 게다.

조심 또 조심해라.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절대 그 사람들을 탓하지 마라. 네 탓이다.

아무리 남의 말하기 좋아하고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행여라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어쩌다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그건 네 탓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도록 해라."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힘들게 짓누르는 생각이 있었다.

'학교 일이나 제대로 하지 뭔 다른 일을 한다고….'

이런 말만큼은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감. 그러다 보니 몸이 고달프다 아우성을 쳐댔고 결국 위장이 탈나 한동안 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참에 호박죽, 전복죽, 새우죽, 야채죽 등등 죽이라는 죽은 다 끓여 먹지 뭐. 맞아,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굴도 빠질 수 없지. 야채까지 듬뿍 넣은 죽을 한 그릇 먹었는데도 왜 이리 허전하지?

역시 어머니는 현명하셨다.

내 탓이로다.

다 내 탓이로다.

마음의 감옥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소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따뜻한 충고를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잔뜩 세우고 받아들인,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모두 다 내 탓이로소이다.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rhea84@hanmail.net

◇재료=쌀 1컵, 굴 150g, 시금치 50g, 당근 3㎝정도, 애호박 60g, 표고버섯 2장, 물 7컵, 참기름 2작은술, 마늘 4쪽, 소금 약간

◇만들기=①쌀은 씻어 1시간 정도 불린 뒤 체에 건져 물기를 빼둔다.

②굴은 남아 있는 껍질을 꼼꼼히 제거한 뒤 연한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는다.

③시금치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불린 표고버섯, 당근, 애호박은 잘게 썬다.

④마늘은 도톰하게 저민 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쌀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⑤물을 넣어 한소끔 끓으면 약한 불에서 쌀알이 충분히 퍼지도록 끓인 뒤 굴과 야채를 넣고 끓인다.

⑥먹기 직전에 소금 간을 하거나 식성에 따라 양념장을 곁들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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