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난징 대학살사건

1927년 12월 13일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南京)을 점령한 일본의 중지파견군(中支派遣軍)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들은 투항해오는 중국군은 물론 일반시민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살해했다. 1938년 1월까지 난징 일대에서 자행된 대학살로 30만명(난징으로 진격 중 약 30만명, 난징 점령 뒤 약 4만2천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공식자료에 따르면, 2개의 자선단체가 매장한 시체만도 15만5천337구(그중 어린이 859구, 부녀자 2천127구)였고, 양쯔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다.

학살의 방법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기관총에 의한 무차별사격 외에도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서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또한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시내의 약 3분의 1이 소실됨)행위도 이루어졌다. 미국'영국'독일 등의 외교관 저택에도, 또한 중국인 피난민을 구조했다는 이유로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당했다.현재 일본 우익은 천인공노할 이 대학살도 축소, 왜곡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지난 12월 8일자 본란의 '석가모니 득도'의 내용 중 성도일 12월 8일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임을 독자 김현규씨가 지적해주셨습니다. 독자님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 개막 ▲1863년 고종(高宗), 12세의 나이로 즉위 ▲1966년 미군, 월맹의 수도 하노이 최초로 폭격.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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