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1천년의 신라역사가 그대로 남아 숨쉬고 있는 탓에 서기 2004년에 살면서도 마음먹기 따라 한 걸음에 달려가 1천300년 전과 조우할 수 있는 곳이 경주다.
초등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 대학시절 데이트코스나 동아리 수련회 때 등 경주를 한 두 번 이상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고, 교육'연수'송년회'단합대회 등의 명목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많이 다녀 간 곳, 그래서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바로 경주다.
경주는 사색에 잠기게 한다. 살아서 누린 부귀영화가 부족했던지 산(山)만한 무덤까지 남겨 후세들에게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알리려는 군신(君臣)들을 경주에 가면 만날수 있다. 작은 다리나 연못 하나에도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비장한 설화(說話)가 서려 발길을 붙든다.
경주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수 있는 곳이 동남산(東南山) 일대다. 보문단지나 토함산, 삼릉 중심의 서남산 일대에 비해 덜 알려졌으면서도 진정한 경주의 맛과 멋을 알게해 주는 야릇한 매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경주 마니아들로부터 받는 곳이 동남산이다.
동남산은 남산 전망대를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흐르는 탑골(탑곡) 일대를 일컫는 것이고 경주 시내를 기준으로 볼 때 시가지와 마주보는 남산의 북쪽 끝 통일전 쪽을 가리킨다. 박물관 입구 7번 국도 네거리에서 울산(불국사) 쪽으로 1.7㎞ 가량을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탑골과 부처골, 산림환경연구소, 화랑교육원, 통일전이 200m 가량 거리를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탑골과 부처바위
통일전 방면 산림환경연구소 입구로 들어선 뒤 오른쪽 마을로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신라 불교의 발자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산의 제일 아랫자락 격인 이 곳부터 남산 전체는 거대한 노천박물관인 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보물 제201호로 지정된 탑곡마애조상군(塔谷磨崖彫像群)이다. 높이가 10m를 넘고 둘레는 30m 가량인 천연의 바위 네면 모두에 불상 조각이 새겨져 흔히 '부처바위'라고 부른다.
탑의 북쪽 면에는 목탑 2기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앞발과 꼬리를 치켜들고 있는 사자상이 조각돼 있다. 목탑 사이에는 여래상이 있고 남쪽면에는 삼존불과 나무 한 그루를 새겼다. 필시 연유가 있겠지만 무지한 후손들은 추측만 할 뿐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한다.
비교적 넓은 동쪽면은 압권이다. 미소짓는 삼존불은 연꽃대좌에 앉았고 본존여래상과 협시보살, 향로를 받쳐든 스님은 각각의 역할이 있으리라. 이밖에도 여러 개의 불상과 석탑, 여래상이 있고 바위에 새긴 불상은 대략 30좌에 이른다. 이 곳을 기점으로 통일전, 서출지를 거쳐 남산에 오르는 길 모두에 신라의 얼이 서려 있어 가다서다를 반복하게 만든다.
◇경북도산림환경연구소
탑골에서 안쪽(통일전)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난다. 12만3천평에 이르는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각종 임업 관련 시험연구와 우량종묘 생산공급 및 산림병충해 예찰방제 등의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멋진 공원처럼 보인다.
진입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산림전시실과 온실, 야생화전시포, 무궁화동산 등이 있는데 보이는 곳 모두가 소공원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긴 나무숲 길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나 가족단위 산책로로 부족함이 없다.
이 곳 온실에는 선인장과 분재, 각종 난대성 식물이 가득해 동호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 잎이 금빛인 금강소나무와 가지가 아래로 처져 '처진 소나무'라고 불리는 희귀수종도 볼 수 있다.
진입로 동쪽에 있는 습지생태원 옆 산책로는 연구소 직원들이 꼽는 최고의 코스. 봄에는 새싹돋는 냄새가 나고, 여름에는 싱그런 잎들이 하늘을 덮으며 가을엔 낙엽, 겨울엔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해 사시사철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다.
◇통일전과 서출지
통일전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29대 태종무열왕과 30대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현판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를 그대로 쓰고 있고 건물은 안압지, 황룡사지 등지서 발굴된 유물을 고증해 신라시대 양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통일전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면 사적 제138호로 면적 7천㎡, 둘레 약 200m 가량인 서출지가 나온다. 이 곳은 까마귀가 신라 제21대 소지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매년 음력 1월 15일에 까마귀에게 제삿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의 풍속이 생긴 근원지로 전해오고 있다. 한여름 연꽃이 필 무렵 서출지와 길가에 아담하게 앉은 정자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두를 사진작가로 만들 만큼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로 진입한 뒤 박물관 입구 네거리에서 불국사'울산 방면(우회전)으로 길을 잡아 1.7㎞ 가량 달리면 통일전, 화랑교육원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편도 1차로를 타고 400m 남짓 들어가면 탑골과 산림환경연구소, 화랑교육원, 통일전이 200m 가량 간격을 두고 차례로 나온다. 남천을 건너는 다리(화랑교)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데 주차장이 없어 다리 근처에 주차하거나 마을 공터를 이용해야 한다. 산림환경연구소(054-748-8843'무료)와 통일전(054-748-1849) 등은 주차장이 아주 넓다. 산림환경연구소는 별도의 울타리가 없어 사실상 24시간 개방되지만 제대로 안내를 받으려면 일과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경주의 먹을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첨성대 근처 속칭 '쪽샘' 인근의 쌈밥집과 한정식집 그리고 해장국집은 나름대로 전통과 명성있는 업소들이다. 보문단지 진입로변에도 한정식집과 매운탕집이, 보문호수 남쪽 도로 끝부분(엑스포단지 입구)에도 매운탕집이 여럿 있다. 또 보문호입구에는 순두부, 갈치찌개, 한식 등 서민들에게 맞는 식당들이 성업중이다.
사진:(사진 1)산림환경연구소내 선인장 온실. 이 곳에는 분재, 난대성식물을 재배하는 온실과 갖가지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
(사진 2)보리사 석불좌상 : 산림환경연구원의 대숲 북쪽 미륵골 보리사에 있는 석불로 자비가 넘치는 얼굴, 유려한 옷자락의 흐름, 화려한 광배 등이 뛰어난 조각으로 통일신라 후반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보물 136호.
(사진 3)산림환경연구소내 산책로. 연인은 물론 가족단위 산책객들에게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사진 4)부처바위:높이 10m 둘레 30m 가량의 자연석에 갖가지 불상을 새긴 부처바위. 하나의 바위에 이처럼 많은 불상을 새긴 것인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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