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였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일생 동안 무려 25만 개의 시가를 피웠다고 한다. 처음 담배를 시작한 것이 스물 여섯 살 무렵 종군기자로 하바나의 전쟁터를 뛰어다닐 때였다니까 91세로 사망할 때까지 65년간 하루 평균 10개 이상의 시가를 피운 셈이다. 나폴레옹도 처칠 못지않은 줄담배 골초였다. 그는 끊임없이 시가를 피워 물고 돌아다니느라 그가 지나간 곳마다 꽁초가 떨어져 있어서 '황제를 찾으려면 꽁초를 따라가면 된다'고 했을 정도로 시가를 즐겼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역시 쿠바 사태로 인해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을 때 쿠바에 대한 물품 통상 금지 조치 발표 직전, 미리 1천200개의 쿠바산(産) 명품 시가를 비밀리에 백악관에 비축 시키도록 했다는 일화가 있다.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야 여러 갈래겠지만 대체로 긴장이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칠이나 나폴레옹, 케네디 같은 역사적 인물의 경우도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에 의한 줄담배 흡연이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종군 기자 처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담배를 시작한 것이나 정치권력의 암투 속에서 지도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했던 나폴레옹과 케네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는 모두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속 타는 심정이라 하겠다.
우리네 시민들도 다시 담배를 피워 물기 시작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계부채에 대한 스트레스, 무력감 등이 서민 생활 속에 번져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IMF 위기가 닥쳤던 1998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담배 소비량은 그 뒤 경제가 되풀리면서 몇 년간 서서히 감소해왔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다시 조금씩 증가세로 돌아서다가 올해 갑자기 급증, KT&G(담배인삼공사)의 통계로는 대구'경북 지역 담배 판매량만 해도 연말까지 4억 갑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 국민이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1998년의 4억6천200만 갑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수량이다. 담배 소비량이 지난해 대비 30% 정도 급증할 정도면 담배를 다시 피워 문 국민들의 스트레스 강도도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 담배라도 안 피우고는 끓는 속을 주체하기 힘든 계층은 단순하게 소득이 막막한 청년'50대 실업자나 하루종일 파리 날리고 있는 식당 사장님만이 아니다. 돌아보면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문을 닫아버리겠다며 벼르고 있는 사학 재단 관계자도 끊었던 담배를 다시 꼬나 물고 싶은 사람들로 보이고 뭐가 뭔지 헷갈리는 수능 시험 관리에 로또 뽑듯 대학선택을 해야 한다는 입시생들과 학부모 등도 담뱃불을 붙이고 싶은 심정들이다. 현실성 부족한 투기방지 대책 탓에 신규 아파트 분양 계약률이 50% 안팎에 머물러 있어 지역 주택 건설 업계도 줄줄이 면허를 자진 반납하고 있다.
'담배라도 피워야…'라는 울화는 경제 사회 쪽에만 뻗치는 게 아니다. 군은 군대로 군 검찰과 국방부 육본 간의 갈등으로 담배를 꼬나 든 장성'영관급 등이 늘어났을 것 같고 공무원 조직은 그들대로 공노조와 행자부간의 마찰과 불화로 피차 담배 안 피우고는 못 배겨낼 울화를 끓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지성인 집단인 대학조차 총장 선거를 학생'교수'일반직 직원 간에 사분오열 이전투구로 날을 새는 싸움판을 바라보는 시민'학부모들로서는 담배 한 대 안 피워 물고는 눈 뜨고 못 봐주겠다는 심정뿐이다.
날이 갈수록 온 나라 거의 모든 계층이 폭발직전의 스트레스와 불안, 초조, 갈등을 희망이나 비전으로가 아니라 애꿎은 담배 연기로 풀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새해엔 희망을 기대하고 찾아보자. 그런 희망과 비전을 꺼내보아야 할 집권 그룹이 국민들로 하여금 줄담배 피울 짓만 골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까지 담배나 축내며 마냥 푸념과 좌절 속에 떠밀려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새해엔 담뱃값도 오른다는데 상할 대로 상한 타는 속이지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느긋하게 새해를 기다려보자. 우리 지도자가 담배 씨만큼이라도 '변화'한다면 새해엔 뭔가 사는 형편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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