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 잊지 못할 2004년이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 한해는 당신(한국영화)이 있어 무척 행복한 1년이었어요. 당신은 1천 만 관객시대를 처음으로 열어젖혔고,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지요. 양과 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모습을 보며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밝은 곳이 있다면 어두운 곳도 존재하는 법이겠지요. 당신이 보여준 저력은 실로 놀라웠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더 많아요. 지난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우리 영화사상 꿈의 숫자였던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지요. 그런데 약 10년이 지나서 그 10배인 1천만 관객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속사정을 보면 어떨까요. 얼마 전 한 영화제작사가 재미있는 분석자료를 내놨더군요. '올해 우리 개봉작 가운데 단 1원이라도 흑자를 낸 영화는 전체의 37%인 25편에 불과했다.
또 30억 원 이상 벌어들인 대박 영화도 5편에 그쳐, 지난해 12편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
이 같은 수치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소수의 큰 영화가 다수의 작은 영화들을 죽인 셈이지요. 어찌 보면 당신 집 평수는 넓어졌는데, 세간은 오히려 줄어든 것과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올 초 70%를 웃돌던 월별 관객 점유율도 갈수록 줄어들어, 급기야 이달에는 28%로까지 급감했잖아요. 영화계 일각에서는 내년 영화시장을 낙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내년에는 당신의 몸집이 더욱 커진다고 하더군요. '남극일기', '천군', '형사', '조선의 주먹', '태풍', '청연' 등 80억 원 이상 투입된 대작들이 수두룩하고, '웰컴투 동막골', '혈의 누', '외출', '야수는 죽어야 한다' 등 60억 원 이상의 중작들도 많아요. 그래서 더 걱정이 앞섭니다.
투자수익률이 높아야 앞으로 더 좋은 영화를 기대할 수 있기에.
하지만, 당신의 저력을 한 번 더 믿어볼게요. 다가오는 을유년에는 당신의 체격만이 아닌 체력 또한 튼실해지기를 기대하면서, 올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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