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여 년 전 경북 경산에 근거를 두었다고 전해지는 압독국(또는 압량소국)의 실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임당지역 고분군을 찾았다.
영남대 정문에서 길 건너 청운길을 따라 원룸촌으로 올라가 임당동 고분군을 찾았지만 안내판 하나 없어 찾기가 어렵다.
조영동 고분군은 원룸촌에 둘러싸여 있고, 부적리 고분군도 잡초가 무성해 찾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봉토분들은 경산시의 동북방 영남대학교 앞 구릉(해발 50~75m)에 모여있다.
서쪽의 임당동 고분군, 중앙의 조영동 고분군, 동쪽의 부적리 고분군으로 된 대단위 고분군이다.
임당동 고분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2년 이곳에서 도굴된 문화재급 유물이 해외로 밀반출되다가 적발되면서부터. 영남대박물관은 이를 계기로 1차 발굴을 벌여 환형 금동관, 관 장식, 은제 허리띠, 마구류, 무기류, 토기 등 2천여 점의 유물들을 출토했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많은 인골과 목제널받침 등 고대 압독국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들도 발견됐다
임당고분의 발굴조사가 끝난 후 1986년에 당국은 임당동을 포함하여 조영동, 부적동 일대 약 10여만 평을 택지개발사업지역으로 지정했고, 1987년부터 공사를 진행해 유적이 크게 훼손됐다.
영남대학교 박물관 측은 이에 항의했고, 1988년 1월부터 6월말까지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을 벌였다.
3천여 점의 유물이 더 출토됐고 3차 발굴에서도 세형동검, 숫돌, 간돌활촉, 민무늬토기호 등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
장기간에 걸친 임당지역 고분군 발굴조사에서는 유례가 없이 많은 유구와 유물이 나왔다.
경산 지역의 매장 문화 방식의 변천 과정도 알 수 있게 됐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압독국의 뿌리와 사회상, 삼국시대 취락, 방어시설, 습지 등 각종 생활유적도 확인됐다.
이들 임당고분군은 지난 1983년 사적 제300호로, 조영동고분군은 1989년 사적331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안내판 하나 없다
임당동 고분의 경우 1985년 36평 전시관이 만들어졌지만 비가 새고, 평상시에는 문이 잠겨 있다.
이러고도 경산이 문화의 꽃을 피운 압독국의 도읍지였었고 삼국통일의 전초기지였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경산시 문화재 정책의 현 주소를 이곳에서 보는 것 같았다.
영남대박물관 김대환 학예연구원은 "고분군과 영남대 박물관을 한데 묶어 관람코스로 만들고, 발굴이 거의 안된 부적리 고분군을 발굴한 뒤 사람들이 고분을 현장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등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산·김진만기자?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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