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樹下三十客이 四十家中五十食이라
人間*豈有七十事리오 不如歸家三十食이라
스무[二十] 나무 아래 서러운[三十] 나그네
망할[四十] 놈의 집에서 쉰[五十]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七十] 일이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 설[三十]은 밥을 먹는 것만 같지 못하리라.
조선 후기 대표적인 방랑 시인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金炳淵)의 詩이다. 이 詩는 漢詩(한시)처럼 글자 수와 운자를 맞추어 지었으므로 보기에는 漢詩 같다. 그러나 이 詩는 우리말을 漢字語로 *假託(가탁)하여 戱畵的(희화적)으로 표현한 한시 파격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를 '언문풍월(諺文風月)'이라고 불렀다.
위의 시에서 二十은 스무, 三十은 서러운 또는 설은, 四十은 망할, 五十은 쉰, 七十은 이런 등으로 읽어야 제대로 풀이된다. 그의 시는 일반 사대부들의 점잖은 내용과는 달리 세상을 *冷笑(냉소)하며 장난스런 것이 많다. 한시의 형식을 취한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병연은 대개 형식이나 표현에서도 기존 한시의 정형성을 파괴하고 破字(파자), 동음이의어의 활용 등을 통해 민중들의 진솔한 삶을 노래하였는데, 이를 흔히 '언문풍월의 희작시(戱作詩)'라고 한다. 漢詩는 과거 과목 중의 하나로 채택될 만큼 중요한 문학의 형식이었지만, 조선 후기 들어 격식을 파괴하고 장난스럽게 짓는 현상이 많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김병연(金炳淵)은 일생을 삿갓을 쓰고 방랑했다 하여 '김삿갓(金笠)'으로 더 알려졌다. 그가 삿갓을 쓰고 일생을 방황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의 조부가 평안도 선천(宣川)부사였을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投降(투항)한 죄로 집안이 *滅族(멸족)을 당했다. 老僕(노복)의 구원으로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했다. 후일 멸족에서 *廢族(폐족)으로 *赦免(사면)되었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은 과거에 응시, 그의 조부를 조롱하는 이라는 詩題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에 올랐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자료제공 : 장원교육 한자연구팀
▨ 한자풀이
*豈 (기) 어찌
*假託(빌 가, 부탁할 탁) : ① 거짓 핑계를 댐 ② 표현법의 한 가지로, 다른 사물을 끌어다 사상'감정을 나타내는 일
*冷笑(찰 랭, 웃을 소) :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
*投降(던질 투, 항복할 항) : 적에게 항복함
*滅族(멸할 멸, 씨 족) : 한 가족이나 종족이 멸하여 없어짐
*廢族(폐할 폐, 씨 족) : 조상이 형벌을 받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
*赦免(용서할 사, 면할 면) :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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