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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람-다큐멘터리 전문 PD 이성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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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 '클로즈업'

지난 12일 밤 KBS 1TV '수요기획'에는 독특한 시각의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전파를 탔다.

'몽골 유목민의 대장정'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는 생존을 위해 매년 해발 3천m의 산맥을 넘는 유목민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자 낯설지 않은 이름 석자가 눈에 띈다.

이성규(43).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 PD다.

이 PD는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연상케한다.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가 춘천에서 극장을 운영한 것. 소년 토토처럼 그는 극장의 영사실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막연히 영화에 대해 동경했죠. 하지만 꿈은 영화 감독이 아니라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같은 영사기사였어요."

그가 방송에 처음 뛰어든 건 1989년. 우연한 기회에 KBS 춘천방송국에서 라디오 클래식 방송의 작가로 방송에 입문했다.

1993년 KBS 라디오 '이성규의 현장 25'라는 고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그는 리포터와 방송작가, 라디오 DJ, 뮤직비디오 연출 등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넓혀갔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감이라기보다는 마치 비누방울 같은 화려함만 보고 있었죠.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것 같은 헛된 사명감에 빠졌으니까요."

지상파 방송의 제작 시스템에 회의를 느낀 그는 1997년 마음이 맞는 몇 명의 PD, 작가들과 함께 '현장'이라는 소모임을 결성했다.

그리고 2년 후 사재를 털어 인도로 향했다.

이 PD는 1년6개월간 인도에 머물며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독립 영화를 제작했다.

인도의 카스트(신분계급) 간의 유혈 갈등을 그린 이 영화로 그는 서울인권영화제 독립 다큐멘터리 부문 본선에 올랐다.

이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KBS에서 방송된 '어떤 귀향', '은둔의 왕국 무스탕' 등 12편이 넘는다.

주로 인도, 네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의 인권문제와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외국인 노동자는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 그가 2001년에 제작한 '국경 없는 마을'도 이런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경기도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3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희망과 꿈, 삶을 담아냈다.

'가리봉동 사람들'편에서는 3개월간 쪽방에 살며 조선족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이 PD의 제작 방식은 독특하다.

촬영지에 도착하면 우선 1주일 정도 쉬면서 국내에서 준비한 기획안과 현지 사정을 충분히 조율한 뒤 제작에 나선다.

또 현지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화될 때까지 같은 곳에서 먹고 자고 마시며 가장 싼 비행기 좌석을 이용한다.

제작기간이 길어지고 함께 촬영을 떠나는 스태프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그가 '한번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유다.

"대개 해외 취재를 나가면 미리 국내에서 준비한 구성안에 현지 상황을 끼워맞추는 일이 잦습니다.

취재기간이나 비용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식의 제작 방식으로는 현실을 진실되게 담아낼 수 없습니다.

"

그는 삶의 진실을 얻은 대신 건강을 잃었다.

태어날 때부터 천식에 시달린 그는 인도에 머물 당시 석회질이 많은 현지의 식수를 그대로 마시다가 풍치가 생겼다.

그 다음으로 온 것이 당뇨. "당뇨 합병증으로 앞니가 서너개 빠지고 치열이 흐트러진 상태예요. 급성 간부전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죠."

2년 6개월 전 결혼하면서 대구에 터를 잡은 이 PD는 지역에 남아시아의 문화를 전파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올 상반기 '타블라구루'라는 인도 타악기 연주자의 초청 연주회를 열 계획. 또 인도, 네팔, 티베트 지역의 해외 취재에서 만난 길거리 연주자들도 초대해 공연을 열 생각이다.

이 PD는 2월 말쯤 다시 몽골로 간다.

순록을 따라다니는 '차탕' 부족과 2개월간 함께 살며 그들의 삶을 필름에 담게 된다

내년 방송을 목표로 불교의 전파 루트와 현재의 모습을 조명한 HD 5부작 다큐 '부처의 길'도 준비하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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