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예부터 환난 당한 집에 도움을 주고, 훗날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면 보상을 받는 관습이 있었다. 한 마을에 살면서 불이 나 집을 잃으면 마을 사람들이 한 집에서 장정 한 명씩 차출하고, 하루 먹을 양식과 짚'새끼 등을 들고 가 봉사했다. 환자가 생기거나 도둑을 맞아도 십시일반 경비를 부담해 도와줬다. 가난 때문에 노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면 추렴으로 여의어 주기도 했다. 길손들을 안방까지 끌어들여 잠을 재우고 노비를 보태는 온정도 베풀었다. 바로 '환난상휼(患難相恤)' 정신이다.
◇ 하지만 오늘의 인심은 과연 어떤가. 당장 먹고살기 힘든 '경제난'을 탓할는지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세상은 각박하고 삭막해져 '너 죽고 나 살자'식 가치관이 창궐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불우한 이웃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은 미국인의 2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형편이지 않은가.
◇ 대구 들안길 음식점들이 방학 중 결식아동 돕기에 나서 훈훈한 화제를 낳고 있다. 해물탕'순두부'초밥'찜'칼국수'불고기 식당 등 이곳 50여 음식점들이 2천500원짜리 식권이면 5천 원 넘는 음식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식당들이 이 같은 단체 선행을 하기는 유례 없는 일로, 수성구 1천100여 명 결식아동들에겐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 수성구청 제의로 들안길 번영회가 한겨울에 이같이 따뜻한 미담을 낳게 되자 결식아동 돕기 운동은 수성구 지역 요식업체 전체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대구시 음식업지회 수성구지부에 따르면 곧 이 지역 모범 업체 258곳을 비롯한 3천500여 음식점들의 참여를 유도할 움직임이라고 한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 운영에 허덕이는 업체들도 적지 않을 텐데 '환난상휼' 정신이 회생되는 것 같아 미덥다.
◇ 결식아동에겐 겨울방학이 참으로 춥고 힘든 계절이다. 방학 때도 식권을 나눠준다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음의 상처까지 입기 십상이다. 평소 식당 한 구석에서 수치심을 참아가며 밥술을 뜨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지 않은가. 더구나 어릴 때의 굶주림과 그 좌절감은 평생 지위지지 않을 수 있다. 굶는 어린이를 포근하게 감싸안는 마음이 '사회의 그늘'을 줄이는 길이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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