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촌의 '코시안'-(3.끝)그들도 한국인이다

경북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코시안은 분명 한국인이다.

어느새 농촌의 미래까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들을 껴안아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체계적 지원은커녕 실태 파악조차 안 하고 있다.

국제결혼 부부 혼자 2세 교육을 한걱정하고 있으며 이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스스로 나서다

20일 예천군 예천읍에선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제결혼가족 모임이 열렸다.

22쌍의 부부, 자녀 10명 등 54명이 참가했다.

회칙을 만들고 임원도 선출했다.

"베트남, 필리핀, 일본, 중국 등 아내들의 '고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든 회원들이 2세를 낳았거나 조만간 낳을 예정입니다.

아내들끼리 외로움을 달래고, 2세 교육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입니다.

"

권오복 회장은 2세 교육의 선결 과제는 "아내 교육"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부터 먼저 가르쳐야 제대로 된 2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

이날 국제결혼 부부들은 "농촌 인구 늘리기 사업이 국가 정책 사업으로 확대되고, 그 핵심에 국제결혼이 있지만 결혼만 시킬 뿐 외국인 아내 한글교육과 문화 적응, 2세 교육 등 사후문제는 관심 밖"이라며 "외국인 주부 전용 한글교실을 만드는 등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시급하다"고 했다.

지난 17일 오후 예천읍내에 있는 북부지역 국제결혼 부부들의 쉼터.

"아페(앞에), 뒤에, 위에, 미테(밑에)…."

흥(25)씨 등 2명의 베트남 출신 주부들이 우리말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쉼터는 예천군 일대로 시집 온 외국인 주부들의 휴식처이자 우리말, 우리 문화를 배우는 공간이다.

경북도내 국제결혼 부부들의 전용 공간은 민, 관을 통틀어 이곳이 유일하다.

쉼터를 연 주인공들은 예천군에 사는 권민혁(39), 권혁대(37) 형제. 동생은 지난해 10월, 형은 11월에 베트남 부인을 맞이했다.

"국제결혼 당사자로 누구보다 많이 2세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엄마부터 가르쳐야 2세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국제결혼 사실을 숨기고 아내들을 집에 가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게 해야 합니다.

"

그래서 쉼터엔 컴퓨터를 비롯해 노래방기기, 조리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다.

단순히 우리말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한국음식도 강습받을 수 있는 전천후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쉴 곳을 찾지 못했던 군내 국제 결혼부부들도 쉼터 조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컴퓨터 기증자만 벌써 4명. 추가 기증을 약속한 사람도 여럿 있다

형제는 "오죽했으면 우리끼리 쉼터를 만들었겠냐"며 "민간이 아닌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쉼터가 경북 농촌 마을 곳곳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책 세워라

충북 옥천에는 지난해 3월 외국인 주부들을 위한 '한국어학당'이 설립됐다.

옥천노인장애인복지관에 매주 화요일 마련되는 학당에는 결혼 1~3년차의 20, 30대 외국인 주부들이 언어구사 능력에 따라 초·중급반으로 나눠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있다.

30여 명의 외국인 주부들은 또 남편과 시부모에 대한 생활예절과 문화, 자녀 교육법 등을 익히고 한국생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순수 민간 사업이며 전국 첫 외국인 주부 대상 한국어학당이다.

그러면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인 주부와 2세 문제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펴고 있을까?

'아예 없다'가 정답이다.

누구 집에 외국인 주부가 있고, 2세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정책이라곤 일부 지자체가 최근 시작한 외국인 주부들을 위한 한국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역시 연중 하루 열리는 일회성 행사 뿐이고 그나마 사업 추진 지자체는 도내 23개 시·군 중 3, 4곳에 불과하다.

국제결혼 부부들은 "외국인 아내와 2세들이 떳떳한 한국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광역지자체 또는 정부 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그들은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들만 동남아 여성들과 결혼한다는 편견은 잘못됐다"며 "국제결혼 부부를 바라보는 이웃의 따뜻한 시선 역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k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 예천군 예천읍에 국제결혼 부부들의 쉼터를 연 권혁대씨가 베트남 주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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