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장실은 '필요악'의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대소변을 보는 행위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거북한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명 화장지 생산업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일 평균 4, 5회 16분 정도를 화장실에서 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별로는 남성은 하루 평균 3, 4회 15분 정도, 여성은 하루 평균 5~7회 18분 정도 화장실에 머문다. 이를 평생 수치로 환산하면 남성은 291일, 여성은 376일 동안 화장실에서 보내는 셈이다. 결국 인간은 화장실을 터부시하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다.
화장실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뒷간, 정낭, 통싯간, 똥구당, 정방, 해우소, 북수간, 변소, 측간, 서각, 측청, 회치장, 시뢰 등 다양하다. 이같이 다양한 언어적 표현들은 은밀한 일을 보는 조그만 공간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늘 한쪽으로 밀려나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던 화장실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생활문화사를 조망하고 있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화장실의 변천사는 인간 문명의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위생시대 막이 오른 것은 대략 5천 년 전. 유대인이 유목민으로 떠돌던 시절, 그들은 모든 야영지를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위생수칙들을 지켜나갔다. 누구든 야영지 밖에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야 했으며 일을 본 즉시 배설물을 땅에 묻어야 했다는 관련 기록이 구약성서에 있다.
그러나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구덩이를 파고 볼 일을 본 뒤 흙으로 덮어버리는 행위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배설물을 물로 씻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류 문명의 발달 척도인 수세식 화장실은 언제, 어디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수세에 의해 오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된 화장실은 1천500년대 말 영국의 해링턴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되었다. 그러나 구조상 문제가 있어 1775년 런던의 시계공인 알렉산더 커밍이 해링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물이 흡입되는 관과 변기 하단부의 여닫이 뚜껑을 금속으로 교체한 수세식 변기를 개발했다. 이는 화장실에서 풍기는 악취를 감소시키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오늘날 수세식 변기와 모양이 흡사하다.
용변을 본 뒤 뒤처리 하는데 종이가 사용된 것은 대략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851년 유럽 여행객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기록을 남겼다. 이는 종이를 발명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종이를 사용하지 못했다. 18세기 귀부인들은 질 좋은 천을 사용했다. 최초의 화장지는 1857년 미국인 조지프 코예티가 발명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화장실의 변천은 문화사적으로 배설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까지 변화시켰다. 오늘날 골칫덩이로 여겨지는 배설물도 19세기만 해도 귀중한(?) 몸이었다. 농가에서는 동물의 분뇨뿐 아니라 인간의 분뇨 역시 두엄으로 높이 쳐 주었고 인간의 분뇨를 가공한 '푸드레트'라는 비료까지 만들어 사용했다. 그 당시 파리의 유력 계층은 사람들의 분뇨를 팔아 큰 수입을 올렸다.
또 화장실은 미생물학 등 기초 과학 발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티푸스, 콜레라, 이질 같은 각종 전염병의 매체로서 분뇨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미생물학도 성장했다.
화장실은 음모와 죽음의 장소였다. 1574부터 1589년까지 재위한 프랑스 왕 앙리 3세는 화장실에서 살해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런 이유로 인해 화장실을 악마가 출몰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화장실은 과거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18세기 중반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비데와 샤워부스, 욕조가 있는 화장실은 이미 보편화되었다. 이제 화장실은 더럽고 추한 곳이 아니라 은밀하고 사적인 장소가 되고 있다. 용변을 볼 때 37% 사람들이 신문과 우편물을 읽는 등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다는 통계가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새로운 욕구 충족을 위해 불룩 나온 배를 비워낼 수 있는 지혜의 장소, 인간이 기꺼이 휴식을 취하는 곳 등으로 화장실을 지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장소로 칭송하고 있다. 212쪽, 8천500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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