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박세일의 눈물

행정도시특별법 국회 통과에 반대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던 박세일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3월 23일 탈당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언론은 그의 소신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의 소신에 동의하지 않는 언론도 그가 공언을 이행한 것에 대해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주장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돌이켜보건대, 노무현정권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너무 정략적으로 다루었다.

지난해 4·15 총선의 승리에 도취돼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제2의 탄핵사태'로 몰아붙이는 오만한 자세를 보였다.

겸허하게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노정권이 행정수도 이전을 초당파적인 국책사업으로 삼아 한나라당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하면서 여론 설득에 나섰더라면 헌법재판소의 10·21 위헌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정권은 자신들의 그런 뼈아픈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걸로 책임 회피를 하려고 들었다.

노정권의 정략은 행정도시특별법 통과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무더기로 쏟아낸 '서울 살리기' 방안들이 바로 그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열렬히 환영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차분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정략적 고려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들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정권의 치명적인 약점은 진실성의 결여다.

서울시민들에겐 그들 대다수의 고향이 지방임을 상기시키면서 큰 타격이 가지 않게끔 잘하겠노라고 설득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옳았다.

설사 선거에서 좀 당하더라도 그런 정공법으로 가야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박 전 의원이 노 정권의 그런 얄팍한 정략을 비판한 건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그런 우국충정(憂國衷情)이 소수파 의견으로 다뤄지는 현실이 답답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큰 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 전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은 물론 행정도시특별법을 '평등주의'로 비판했다.

그의 눈물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른 모든 비판엔 동의해도 그 비판엔 동의하기 어렵다.

지방에서 한번 살아보시라. 그런 말 안 나온다.

군사독재정권들도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게 미덕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진 않았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행정도시특별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노정권의 정략을 모르는 게 아니다.

박 전 의원보다는 덜하겠지만, 그 정략의 과잉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하고 있다.

다만 그들은 아무 희망도 없이 '지금 이대로'를 더 이상 감내하진 못하겠다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행정도시특별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평소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애쓴 사람들이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울'을 '대한민국'으로 간주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노정권은 가볍고 얄팍한 정략으로 오염되긴 했지만 미래의 비전만큼은 올바르게 제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략에 개탄하면서도 그 비전에 대한 공감으로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해 소극적 지지를 보내거나 침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박 전 의원이 지방민들의 삶의 현장을 체험해보면 좋겠다

왜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인구 늘리기'를 위해 눈물겨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살펴보면서 '국가경쟁력'이라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긴 했지만 내공의 부족으로 정략의 수렁에만 빠져드는 정권을 도와 국가 백년대계를 함께 세우는 건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의 존경을 누리고 있는 박 전 의원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노정권을 '평등주의 정권'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 '평등주의'라는 게 왜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그런 성찰의 기반 위에서 좀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의 눈물이 진실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 눈물이 지방민들을 위해서도 흘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