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베트남 패망

1975년 4월 30일 10시 14분 베트남의 두옹 반 민 대통령은 공산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1973년 3월 미군이 군사개입을 포기하고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킨 지 3년 만에 베트남은 무력에 의해 공산화 통일됐다.

공산군을 능가하는 병력과 장비는 무용지물이었다. 계속된 사회적 혼란과 정치 불안 때문이었다. 1975년 초 공산군의 대공세가 시작된 지 4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무조건 항복 선언이 나왔다.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 프랑스 식민지로 90여 년, 다시 미군의 개입. 베트남의 오랜 투쟁의 역사는 우리와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 오랜 전란으로 국토가 초토화된 것도 마찬가지. 14년 동안 미군이 쏟아부은 자금만 해도 1천410억 달러, 전사자 5만6천 명(한국군 4천687명), 사용된 폭탄만 1천300만t에 달하는 '역사상 가장 큰 파괴전쟁'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이는 곧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졌다. 통일 후 외국원조의 단절, 서방의 경제 제재 및 봉쇄 정책, 이웃 강대국과의 관계악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의 침공 등은 더 많은 어려움을 안겨줬다.

1986년부터 본격적인 개혁을 시도한 베트남은 1995년 7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등 국제적인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이제 종전 30주년인 올해, 놀라운 경제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베트남을 세계가 다시 괄목상대하고 있다.

▲1692년 조선 문신 김만중 사망 ▲1945년 아돌프 히틀러 자살 ▲1950년 국립극장 개관 ▲1996년 정부, AFKN VHF채널 2번 환수.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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