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일산 방향으로 자유로를 타고 가면 파주출판문화단지가 나온다. 한강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아 늪지를 끼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의 '파주북시티(Book City)'는 디자인과 출판, 인쇄, 제본 및 유통이 한데 어우러진 출판인들의 '꿈의 도시'다.
48만 평 출판단지 곳곳에는 이미 한길사와 민음사, 열화당, 나남출판, 동녘, 돌베개, 창비, 문학수첩 등 60여 출판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쇄소인 보진재 등 인쇄시설들도 일찌감치 들어섰다.
완공된 출판사 사옥 사이사이에는 40여 개 출판사 신축공사로 대형 차량 출입이 잦았다.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출판단지 전체에는 책향기가 물씬 묻어나왔다.
◆책+문화+건축=파주출판문화단지
이곳은 책과 문화와 건축이 만난 거대한 문화공간이다. 이곳저곳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북카페를 만날 수 있고 건물마다 독특한 형태가 보행자의 시선을 잡는다.
열화당 사옥 1층에는 아트북 카페 '향기 있는 책방'과 갤러리 로터스가 있다. 갤러리에서는 지난 20일까지 '최민식 사진전'이 열렸고 아직까지 전시회 현수막이 나풀거렸다. 아시아센터 바로 옆 효형출판 2층에도 북카페 '북샵'이 마련돼 있다.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가면 나남출판과 창비, 문학동네가 나란히 있는데 이곳 문학동네 사옥 1층도 연말까지는 북카페와 전시장으로 바뀐다.
이곳 출판문화재단의 김근상 기획홍보부장은 "도시 전체가 2006년이면 전시공간을 완전히 갖춘 토털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출판사 건물 하나 하나는 독특한 건축미를 갖춘 예술작품들이다. 출판단지는 '책과 건축이 만나는 생태환경도시'로 구상됐다.
그래서 단지 전체가 여러 개의 테마를 가진 블록으로 나뉘었고 각 블록은 세계적인 수준의 국내외 건축가 40여 명의 건축지침에 따라 건물설계를 하도록 출판인들은 규약을 정했다. 4층 이상을 짓지 못하는 고도제한도 적용받는다. 건축가도, 출판사도 자기 주장보다는 이 같은 지침에 따라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인들은 이를 '위대한 계약서'라고 부른다.
한길사 사옥은 서가에 네 권의 거대한 책이 꽂혀 있는 모습으로 보였고, 열화당 사옥은 검은 나무박스에서 두부를 썬 듯한 형태였다. 사옥뿐 아니다. 출판단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개천에 놓인 다리 중 가장 긴 '은석교'(隱石橋)는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의 아호인 은석(隱石)에서 따왔다. 출판계의 역사까지 담겠다는 것이다.
파주출판단지는 세계적인 책마을을 꿈꾸고 있다. 영국 웨일즈지방의 헤이온와이(Hey-on Waye)나 일본 도쿄의 고서점거리 간다 등이 헌책방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세계에서 전례 없는 '출판 관련산업이 집중된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파주출판단지는 벌써 독특하다.
◆국가산업단지, 세금 감면까지
출판도시를 위한 문화공동체는 1989년 시작됐다. 출판인들은 책을 통한 민족문화 발전이라는 뜻으로 한데 뭉쳐 출판문화산업단지 건설추진을 위한 발기인대회를 가졌고 이어 91년 사업조합 결성에 성공했다. 97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됐고 99년 기반시설공사가 시작됐다. 2002년 아시아출판문화센터 교육연구동이 완공됐고 출판물종합유통센터 '북센'(Booxen) 기공식도 가졌다. 2002년 한길사 열화당 등이 우선 입주하면서 출판사들의 파주시대가 열렸다.
연말까지 1단계로 26만 평이 완성되면 나머지 22만 평에 대해서도 조기에 세부추진계획을 마련한다는 것이 조합 측 계획이다. 전원형 집단주거시설 공사도 진행 중이다.
출판단지는 국가산업단지라는 점에서 조세제한특례법 상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입주하는 것은 이 같은 혜택보다는 출판산업 집적화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출판기획과 디자인, 편집, 인쇄, 유통 등이 집중화한다면 경쟁을 촉발하면서 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출판인은 책값을 낮추지는 못해도 인상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생활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오가는 대중교통편 확보도 숙제로 남아 있다. 서울 합정동을 오가는 조합버스가 있지만 누적적자가 매달 1천5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노선버스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자치단체 간 이해다툼으로 승인이 나지 않았다. 자칫하면 출판도시가 아니라 '출판섬'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사진 김영욱기자 mirag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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