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천변풍경

서울시가 2003년 7월부터 진행해 온 청계천 일대 복원사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모양이다. 오는 10월 1일 청계천 준공식을 앞두고 다음달 1일 실제로 물을 흘려보내는 '유지용수 통수 시험'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청계천에 다시 본물이 흐리기도 전에 조선 초기 민가에서 유입되던 오수보다도 더 지독한 냄새가 나는 '부패의 물'이 청계천 바닥 위로 안개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복마전이다. 곧 비리의 사슬에 관련된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1930년대 천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기록한 박태원이 살아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1년간 일어난 다양한 서민생활상을 50개의 삽화로 나누어 보여준 소설이다. 이발사·신발가게 주인·포목점주·약국·금은방·여관주인·행랑어멈·부의회 의원·첩·기생·아이스케이크 장수 등 1930년대 식민지 수도 서울의 각양각색 70여 명이 만들어내는 삶의 파노라마가 애증으로 점묘되던 곳, 그래서 청계천은 보통사람의 하천이었다.

이 소설에는 특정 주인공이 없다. 그 이유는 청계천변에 살던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박태원의 청계천변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 공간을 형성하고 사는 모든 사람이 비록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조화된 목소리로 화음을 빚어내던, 모두가 주인공인 삶의 터전이었다.

물론 박태원의 '천변풍경'에도 비리와 범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악취가 진동하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사랑하는 여자의 방귀처럼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정도의 냄새였다.

힘 있는 사람도 힘 없는 사람도 더불어 삶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내던 곳, 일제가 만들어낸 그악한 사슬에도 아랑곳없이 보통 사람들이 꿈꾸던 희망과 삶의 애환이 소박하게 흐르기를 박태원은 원했다. 부디 청계천이 악취 나지 않는 맑은 흐름으로 온전히 복원되길 바란다.

노상래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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