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평가 실시간 확인 짜릿하죠"…인터넷 만화가 서상훈씨

'불량만화' 모바일 컨텐츠 제공…홍콩·일본 등 해외 진출 타진

골목을 돌아 들자 옛 정취가 물씬나는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마당 한 쪽에 자리잡은 작은 방의 방문을 열었다. 인터넷 만화가 서상훈(35·대구시 중구 서문로)씨의 작업실이다. 서너 평 남짓한 좁은 방안에는 커다란 TV와 책상위의 컴퓨터와 스캐너, 만화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전부다. 방안에 들어서자 사방이 조용하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대로변이지만 방안은 날벌레 소리까지 들릴 정도. 도심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을까 싶다. 간신이 들어 앉을 공간에 종이는 없다. 평범한 컴퓨터와 스캐너, 모니터에 떠 있는 포토샵 프로그램이 전부다.

서씨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활동하는 인터넷 만화가다. 현재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선보이고 있는 연재만화는 '불량만화', '대한민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법', '신은 그들에게 거울을 주지 않았다' 등 3편. '불량만화'와 '프리랜서…'는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모델로 일상 속 이야기들을 실어낸 작품이고 '신은 그들에게…'는 장편 환타지 만화다. '불량만화'는 포털 사이트 네이트닷컴과 모바일 컨텐츠로 제공 중이다. 특히 모바일 서비스는 서씨가 거둬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근데 제 휴대폰이 구형이라 정작 저는 휴대폰으로 제 만화를 본적이 없네요 하하."

서씨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름난 만화가 문하에 들어가 정식으로 만화수업을 받는 '아날로그' 만화가 시절은 불과 2년 남짓. 그는 만화와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경북대 농업기계공학과 박사 과정을 이수하다 중퇴했다. 이후 고교 교사와 대학교 강사, CAD 기사로 살았다. 왜 만화가의 길로 일찌감치 들어서지 않았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튀지않는 삶'에 대한 압력때문이었죠. 하지만 평범한 직장생활들을 해 봐도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2000년, 서른의 적지않은 나이에 도미를 감행했다. 미국 디자인 회사인 'CAI concepts' 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것. 일본과 홍콩을 거쳐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벽은 높았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간 출판사에서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개성적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당했다. 실컷 디자인을 해주고 돈을 떼이는 경우도 많았다. 거듭된 좌절과 함께 그를 찾아온 우울증. "앞이 보이지 않더군요. 막연히 디자인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고민하던 차에 마침 대통령 탄핵반대 릴레이 만화에 참여하게 됐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인터넷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요즘 홍콩 디자인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경동정보대학 게임애니메이션학과 겸임교수, 경북대 전산교육센터 3D MAX 전임 강사로 활동중이다.

그의 캐릭터는 신세대 취향에 맞는 동그란 얼굴에 귀여운 표정이 특징. 또 네티즌들에게 "인생이 묻어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공책 3권에는 6개월 분량의 이야기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작품을 새로 시작하기 전에 모든 스토리와 구성, 결말까지 모두 짜놓는 습관 때문이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없어요. 하루에 15시간이상을 작업에 매달리니까요. 3시간 정도 운동하는 것 외에는 바깥출입이 거의 없는 편이죠."

그가 말하는 인터넷 만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형식의 제약이 없고 독자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작가도 출판사의 간섭없이 자유롭고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할 수 있구요." 하지만 수익구조가 불확실해 부침이 심하고 다양한 그래픽 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서씨는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은 일본에 거의 잠식됐지만 새로운 형식인 인터넷 만화는 경쟁력이 있다는 것.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이 융합된 새로운 형식의 인터넷 만화라면 해외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콩과 일본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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