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러닝 시대-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사이버 학습'

동시통역사를 꿈꾸는 형수(고1)는 요즘 혼자 하는 영어 공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등하굣길이나 집 근처 공원 등에서 틈만 나면 강의를 듣고, 영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 장면을 보고, 혼자 말하기 연습을 한다. 엄마와 실랑이 끝에 구입한 신형 휴대전화 덕분이다.

섬유업체에 다니는 김기수(32)씨는 회사일로 조만간 중국에 다녀올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한 번도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학한 중국어 실력을 회사에서 인정받은 것.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지난 일 년여 동안 밤 시간을 쪼개 인터넷 강의를 들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e러닝 시대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학교나 학원에 가지 않고도 학생들은 공부를 위해,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을 위해, 기업은 인재양성을 위해 얼마든지 다양하고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Anyone), 언제(Anytime), 어디서든(Anywhere), 자신만을 위한(just for me)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e러닝 어디까지 왔나

e러닝은 이제 단순한 교수-학습방법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웰빙으로 불리는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중요한 기재로 꼽힌다. 지식이 더 이상 일부 지식인만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배우고 습득할 수 있는 공동소유의 형태로 바뀌면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실업 또는 전직에 대비하거나, 자아실현을 도와주거나, 소외 계층의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과 세계 3위의 인터넷 이용률,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 시설 등에 힘입어 e러닝에서도 급속한 발전을 계속해왔다. 90년대 후반 기업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98년 가상대학 시범사업, 초·중등학교의 정보통신활용 교육, 기업들의 인적자원 개발 프로그램 등 다양한 모델을 거쳤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EBS 수능방송은 문제점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e러닝에 대한 관심 증폭과 시장 확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입시 시장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업체들의 비약적인 발전도 e러닝의 보편화를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MP3, PDA, DMB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e러닝의 장벽들을 급격히 무너뜨리고 있다. MP3로 강의를 다운받아 듣는 서비스, PDA를 통한 고시나 자격증 강좌, 휴대전화를 이용한 학습 서비스, 인터넷에 연결된 셋톱박스로 TV를 통해 강의를 듣는 서비스 등의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e러닝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인식이 자리 잡으며 세계 각국의 정책적 투자도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e러닝 센터를 구축했으며 유럽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일본은 5년 전부터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 100여 개 기관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e러닝을 꾸준히 확산시키고 있으며, 중국 역시 대학들의 온라인 교육 실시, 2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한 중앙TV대학의 e러닝 전환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장은 소리없는 전쟁 중

우리 정부와 업계는 올해를 e러닝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기로 보고 있다. e러닝을 통해 직업능력을 개발하는 기업 근로자가 50%를 넘어서고, 공교육에서 e러닝이 차지하는 비중이 15%까지 성장하면서 국내 e러닝 시장은 콘텐츠, 솔루션, 서비스 등을 통틀어 3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러닝 초기 시장 확대를 주도한 것은 어학 학습과 자격증 취득 강의 등 학습 동기가 분명하고 강한 일반인들이었다. 그러나 EBS 수능강의를 전후해 초·중등 교육시장의 매출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메가스터디. 2001년 창업 첫해 매출 40억 원으로 출발해 4년만인 지난해 매출 503억 원, 순이익 148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702억 원. 지난해 EBS 수능방송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올해는 여기에서 벗어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온라인 업체들이 벌이는 콘텐츠 승부도 숨막힌다. 동영상 강의는 기본. 학업성취도나 수강 정도 등을 학부모에게 전송하거나 효율적인 학습 가이드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담임제도 보편화했다. 선행학습이나 내신 대비 프로그램, 입시정보 제공 및 컨설팅, 학습관리 등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이 갈수록 세분화하고 있다.

이는 e러닝 시장의 진화로 표현된다. 도입 초기 면대 면 교육의 보조 수단으로 e메일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이용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교육의 전 과정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앞으로는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을 적절히 혼합한 브렌디드 형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도 변한다

90년대 후반부터 교육부는 교육정보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모든 학교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교사마다 PC가 보급되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e러닝 인프라를 갖췄다. 교육부와 학교, 교사는 물론 연구소와 기업체들까지 각종 교육용 콘텐츠 개발과 보급에 나서면서 인프라 활용을 위한 콘텐츠도 양적·질적으로 풍부해졌다.

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가정에서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구와 경북, 광주교육청이 시작한 사이버 가정학습 서비스를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학급을 만들고 담임이 생기고 학생들에게 적합한 학습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것.

대구의 경우 지난해 중학교 1학년생 1천200명에게 수학, 영어, 과학 과목의 e스터디를 시작했다. 소외계층에는 보충학습, 우수학생에게는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주5일 수업제의 정착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초등학교 6학년 국어와 중학교 전학년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고교 일본어와 중국어 등으로 확대해 3천 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학습자가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조언자로 변신하게 될 전망이다. 학생들 역시 수동적인 학습 형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학습을 조직하는 한편 같은 학습 목표를 가진 학생들과 지식,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인터넷에 모바일,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까지 갖춰지는 다가올 교육 현장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달 열린 교육박람회 미래교육관에 소개된 모습, 전문가들과 업계의 예측을 종합해 보자.

▲학교에서는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으로 출석이 체크된다. PDA에 오늘의 일과와 전달사항 등이 나타난다. 교사는 대형 전자칠판을 활용해 교재와 강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인터넷과 동영상 등으로 수업 집중도를 높인다. 학생들은 전자책 한 권만 갖고도 모든 과목 교재를 볼 수 있고 노트 대신 태블릿 PC에 필기를 한다. 팀별로 이루어진 학습 결과는 교사와 다른 팀에 전달돼 비교 학습이나 토론 등이 즉시 가능해진다. 강의 내용은 자동 저장돼 복습이나 결석 학생들의 학습에 활용된다.

과학실에서는 기자재마다 사용 방법이 표시되고 실험 내용이 입체적인 동영상으로 제공되며 위험한 상황에는 경보 센서가 작동해 실험을 자동중단한다. 체육시간에는 센서가 달린 체육복과 운동화 등을 통해 개인별로 적절한 운동량을 표시해준다.

▲가정에서는

학교 수업에서 궁금했던 내용은 하굣길에 PDA나 태블릿 PC로 찾아본 뒤 집에 와서 컴퓨터 기능이 통합된 디지털 TV로 다시 복습한다. 화장실 벽면 거울에서 알림장 메뉴를 누르면 담임 교사가 영상으로 보내온 학습정보와 준비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거실에 달린 디지털 액자에서는 사이버 캐릭터가 나와 외국어 회화를 도와준다.

에이전트 학습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도우미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복습과 심화학습을 도와준다. 숙제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 공부한 내용과 성취도를 체크해 적절한 공부 분량과 수준을 조언해준다. 이런 내용은 학부모에게도 전달되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경고 기능을 가동해 학습 상황을 점검하거나 담임 교사와의 상담을 유도한다. 여유가 있을 때는 집 근처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는 멀티디스플레이 서가에서 책을 골라 내용을 살펴본 뒤 PDA로 금세 다운받을 수 있다. 내용이 다소 어려우면 시청각실에서 관련 동영상을 보거나 콘텐츠 체험실에서 책의 내용을 직접 체험해 본다.

사진: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을 위한 학습이 가능해진 e러닝 시대에는 학교 교육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사진은 학교 멀티학습실에서 어학 공부를 하는 고교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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