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영애, '친절한 금자씨'서 연기 변신

초콜릿과 수박을 연이어 먹지는 않을 것이다.초콜릿의 단맛이 워낙 강한 탓에 수박 만의 묘미가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열광한 영화팬이라면 '친절한 금자씨'(이하 '금자씨') 개봉을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전작이 워낙 월등했기 때문에 비록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같은 복수시리즈 작품을 맞이하는 기대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가졌을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자씨'는 수박(?)은 아니다. '올드보이'라는 강렬하다 못해 쓰디쓴 맛과 딱딱한 촉감을 지닌 '초콜릿'과 대비되는, 순백색의 달콤한 맛에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생크림이라면 적절한 비유일까.

영화는 우선 전작들처럼 이금자(이영애)의 처절한 복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형식은 조금 다르다. 전작들이 가슴 서늘할 만큼 무미건조한 톤이었다면, '금자씨'는 성인들의 우화인 양 금자의 머리에 후광이 너울대고, 연기 9단 카메오들이 과장된 연기를 선보이며 일반적인 '박찬욱 표 복수 시리즈'를 기대한 관객들을 초반부터 헷갈리게 만든다.

날라리 여고생 이금자는 또래 남학생과의 불장난으로 비롯된 임신 때문에 무작정 영어 교생 실습을 나왔던 백 선생(최민식)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친절하게 금자를 받아준 백 선생은 '부자 돈은 조금 훔쳐 써도 티도 안 난다'는 해괴한 논리로 갓 애엄마가 된 금자로 하여금 유괴를 돕게 하고, 아이마저 살해한다.

때마침 금자가 우연히 경찰에 연행되자 백 선생은 비밀을 폭로하면 딸을 죽이겠다면서 대신 죄를 뒤집어쓸 것을 요구하고, 이금자는 경주교도소에서 13년간을 복역하면서 철저히 복수를 준비해 출소한 뒤 '나 이제 변했어'라고 외치는 듯 붉은색 아이 섀도를 칠한 채 백 선생을 압박해 간다.

여기까지 기사를 읽은 독자들 중에는 '복수의 과정을 이렇게 상당 부분 오픈해도 되느냐'며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박 감독 자신의 지적대로 이 지점부터 전혀 새로운 장르로 변주된다.

'올드보이'처럼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복수가 아닌 결국은 구원의 메시지를 향해 냉소적이면서도 숨가쁜 발걸음을 이어간다.박 감독은 명성대로(!) 영화의 주제 구현을 위해서라면, 유괴, 살인, 동성애, 청부살인 등 어떤 터부시 되는 소재와 상황도 가리지 않고 다 끌어와 캐릭터들의 극한의 감정을 구현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이영애는 '대장금'에서의 그저 단아하고 똑 부러지게 연기하는 모습을 넘어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최고의 찬사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이영애가 만든 다양한 케이크들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공간들, 영화에 잘 스며든 OST 곡, 재기 발랄한 교차 편집 등 영화의 디테일에서도 특별한 흠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박 감독의 원죄(?)는 이번에도 그를 따라다닐 전망이다.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등장하는 잔혹한 장면들과 기괴한 설정들은 박 감독의 마니아와 평론가들을 열광케 하겠지만, 일반의 여성 영화팬과 중-장년층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두렵기까지 한 장르일 수밖에 없다.'올드보이'와 '쓰리 몬스터'에서 드러난 흥행의 한계를 '금자씨'가 깨뜨릴 수 있을지도 또 다른 관심거리다. 29일 개봉.

스포츠조선 신남수 기자 de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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