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이 이야기는 할머니가 네 어머니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란다. 할머니는 살아 계실 때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이야기만큼은 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에 처음 해주셨단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할미가 살았단다. 이 할미는 일찍이 혼자 몸이 되어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지. 혼자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이 할미는 성질이 좀 고약했어. 이웃집에서 물건을 빌려쓰고는 제대로 돌려주지도 않고, 낯선 강아지가 집으로 들어오면 붙잡아 놓고 돌려보내지도 않았어.
세월이 흘러 아들이 다 자라자 장가를 보내었는데, 이 할미는 며느리를 여간 구박하는 게 아니었어. 밥이 조금만 질면 '이게 죽이냐, 밥이냐?'하며 호통을 쳤고, 밥이 조금만 되면 '이게 돌덩이냐, 밥이냐?'하고 야단을 쳤지. 그런데도 이 며느리는 고분고분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했어. 그리고 언제나 웃는 표정을 잃지 않았지.
어느 날, 며느리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어. 그때, 이 할미는 또 며느리 옆에 앉아서 돋보기를 끼고 바느질이 잘 되었는지 살펴보고 있었어. 시어머니가 들여다보고 있으니 며느리는 손이 좀 떨렸어. 그렇지만 침착하게 바느질을 해 나갔지.
그때였어. 이웃집에 갔던 아들이 돌아왔는데, 손에는 마른 가자미가 한 두름 들려 있었어.
"얘야, 그게 무엇이냐?"
할미는 반가이 물었지.
"네, 어머니께 드리려고 가자미를 조금 사왔습니다."
"그래, 그거 참 맛있게 생겼구나."
할미는 입을 다셨어.
이윽고 저녁 때가 되어, 밥상을 둘러보던 이 할미는 그만 역정을 내며 돌아앉는 것이었어.
"흥!"
"어머니, 또 왜 그러십니까?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계십니까?"
아들이 물었지만 할머니의 역정은 풀리지 않았어.
아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동안 며느리는 침착하게 생각해 보았지.
'어머님께서 왜 저러실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어디 보자, 처음부터… …. 아, 그렇구나!'
며느리는 벌떡 일어나서 바느질 그릇을 뒤졌어.
무엇을 찾았을 것 같니?
"… …."
며느리가 찾아낸 것은 돋보기였어.
그걸 시어머니께 슬며시 씌워 드렸지.
그랬더니 이 할미는 빙그레 웃으며 미안해하는 것이었어.
왜냐고?
이 할미는 아들이 가자미를 사올 때에 돋보기를 쓰고 있었거든. 그러니 그 가자미가 얼마나 커 보였겠어. 그런데 밥을 먹으려고 돋보기를 벗고 보니까 아주 작게 보였던 거야. 그래서 큰 것은 숨겨두고 작은 것만 자기에게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지.
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고는 '고 작은 바늘귀도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이제는 이 돋보기를 끼고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구나. 눈은 어두워지더라도 마음만은 밝아야 하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고… ….'하셨지. 그런 지 얼마 안 되어서 할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어.
아, 지금도 네 할머니 생각에 목이 메는구나.
심후섭(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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