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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압 장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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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압 장군을 찾아서/안정효 지음/들녘 펴냄

소설 '하얀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으로 새로운 전쟁문학의 장을 열었던 안정효씨가 신작 소설 '지압 장군을 찾아서'(들녘)를 펴냈다.

1966년, 26세의 나이로 베트남 전쟁에 종군했던 저자는 베트남의 참상을 잊지 못한다. 육순을 훌쩍 넘긴 그에게 이제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남아있는 베트남은 아직까지 그에게 무의미한 전쟁의 존재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책 '지압장군을 찾아서'는 저자가 200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10주년을 맞아 베트남을 찾아가 호치민에서부터 하노이까지 '통일 열차'로 종단하는 시점에서 출발해 2005년의 현재 상황까지 담아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 등 계속해서 일어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 위해서이다.

소설 '하얀전쟁'의 주인공 한기주가 주인공이 되어 보응웬지압 장군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통해 베트남의 과거와 현실을 들려준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기행문의 형식을 띠면서 소설적 상상력을 담고 있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어니 파일, 톰 티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을 비롯한 수많은 종군기자와 작가들이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전쟁터로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언론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무엇을 했던가. 책의 전반부 상당부분이 종군기자와 언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베트남전이 진행되고 있었을 당시 '대한늬우스'을 통해 들었던 '정의의 십자군', '무적의 따이한'소식과 한국인의 영웅담을 전설처럼 듣고 그대로 믿었던 우리들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한국에게는 베트남 전쟁이 근대화과정 언저리에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베트남 참전병들이 작전에 나갔을 때 가끔 하늘에서 노란 비가 쏟아지곤 했다고 한다. 숨막히는 더위와 싸우며 병사들이 정글을 헤매고 돌아다닐 때, 어디선가 미 공군의 수송기가 상공에 나타나 날아가면서 정글 위에 노란 물을 뿌려대면 병사들은 시원한 샤워를 한다며 웃통을 벗어 젖히고 그 노란물을 알몸으로 반겨 맞았다고 했다. 그 노란 빗물은 고엽제였다.

베트남으로 갔던 31만 2천853명의 한국 군인 가운데 4천687명의 병사와 297명의 장교가 전사하고 364명은 단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걸고 벌어들인 전투수당은 고향에 돌아와서 써보지도 못했다.

저자는 호찌민의 승리 뒤에는 지압 장군의 치열한 전쟁과 생애 말고 또 무엇이 숨어있으며 자본주의는 이제 베트남에서 어떤 얼굴을 보이는지에 대한 사색의 결과를 풀어놓기도 한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먼 길을 달려 만난 보응웬 지압 장군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호찌민과 보응웬 지압은 과거시대의 화석으로 남아있었다. 호찌민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연장한 선상에 위치한 지압장군은 하나의 분신으로서 평생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존재할 따름이다. 그래서 한기주는 인터뷰 시간 내내 지압장군이 늘어놓는 회고담을 그저 듣고만 있어야 했다.

한기주는 베트남을 떠나면서, 지압장군은 그가 맡았던 전쟁을 끝내고 그의 역사 한 자락 끝을 이불처럼 덮고, 지금쯤 저 아래 석기시대의 어둠 속 관저에서 잠이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 곳곳에 실려있는 사진들은 대부분 작가가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베트남에서 종군을 하며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단순히 베트남의 현재를 돌아보는 기행문이 아니라 작가와 과거 베트남전 경험을 되돌이켜 보면서 세계의 국지적인 여러 분쟁에 얽힌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 조지 부시 정권이 추구하는 패권주의에 따라 달라진 미국의 새로운 정체성,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적 공통점 뿐 아니라 이라크전과 베트남전의 유사성, 그리고 제3차 식민지 세계대전이 유발하는 현상들도 작가적 시각으로 성찰하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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