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부터 틈만 나면 양동마을로 향하기 시작한 발걸음이 지금 헤아려 보니 스무 번은 더 되는 듯하다. 처음엔 집사람도 신나서 따라나서더니 '집' 하나 보러 들어가선 서너 시간을 꼼짝 않는 모습에 질려선지 이젠 함께 가겠노라 하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매료된 것은 가을 햇살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늦은 오후 심수정(心水亭) 삼관헌(三觀軒) 대청에 앉았을 때였다. 세 창문을 나란히 열어젖힌 순간 아름드리 고목과 함께 펼쳐지는 풍경은 그 어떤 그림과도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창이라는 프레임에 기막힌 자연을 걸어두고 어느 선비가 감히 그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문인화의 크기가 그리 클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간채에서 바라본 서백당(書百堂)의 마당은 눈높이에서 사랑채 기단이 수평으로 내달리더니 직각으로 한 번 방향을 튼 후 다시 가던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나 같은 이방인조차도 넉넉히 감싸는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이 축대 위 절묘한 위치에 자연석에 가까운 붓돌이 하나 놓여있는데 축대의 직선적인 괴체감과 대비를 이루며 한 점의 추상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내가 보는 것은 낡은 것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오랫동안 현대미술이 희구해 왔던 새로운 만남의 현장인 것이다. 기단돌이 맞물리는 모양에서부터 갖가지 모양의 목자재가 만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아도 경이롭지 않은 구석이 없다.
우리가 현대미술의 발상지라 일컫는 프랑스의 미술교육은 무엇보다도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코 오늘이 과거의 전통과 별개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기에 시대를 관통하는 편견 없는 미의식을 어려서부터 강조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 새로움이란 신기루를 좇아 과거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이두희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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