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을 방문한 배용준의 기자회견이 사상최대의 취재진을 집결시켰다고 한다. 취재진만 1천100여 명. 과거 최다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850명이었다. 그 다음이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830명. 이런 순위는 또 처음 보지만, 그의 취재진 동원력은 전대미문이란다. 그 며칠 뒤, 이번엔 한국 드라마가 일본 방송국들의 편성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거품이 빠진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얼마 뒤, 이번엔 가수 박진영이 나와 한류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 비즈니스로 봐야 한다고 한마디 한다.
지난 여름 아테네올림픽 때 제대로 준비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개막 직전까지 계속됐다. 수영장은 지붕조차 덮을 수 없다고 했다. 4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지중해 직사광선 아래 놓일 선수들의 건강과 그로 인해 저조할 기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넘쳤다. 선수보호와 TV중계를 위해 반드시 지붕이 있어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압박에도 그리스는 결국 뚜껑 없이 대회를 시작한다. 수영은 그렇다 쳐도 드러누워 태양을 바로 보기도 해야하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들의 항의에 대한 그리스의 대답은 이랬다. "그럼, 밤에 하지, 뭐." 올림픽 사상 최초의 야외 달밤 체조가 된 거다. 그런데 달빛을 등진 수중공연은 대단한 인기였다. 수영 역시 세계신기록이 8개나 작성됐다. 우리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외국 손님들 앞에 이 무슨 망신인가 싶어 한없이 송구스러워져 인력을 동원해 경기 내내 천 조각이라도 붙들고 지붕을 덮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영장은 지붕이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외부의 절대 기준이 내게 명한 준수사항이니까. 그리스 사람들은 그 기준을 다시 세팅해버린 것이다.
한류는 우리 스타일이 어필되어 아시아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쿨하다 여기게 만든, 우리 역사상 최초의 본격 문화 수출이다. 우리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는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우리 특성, 색깔, 사는 방식이 멋지거나, 섹시하거나, 세련된 걸로 간주된 것이다. 신기하다. 하도 신기해 믿음이 안 간다. LA 동네회관에서 교포들을 상대로 노래자랑하다 온 걸 미국진출이라 말하던 그 시절의 수작인가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언제 이런 규모로 남들 모방의 기준이 되어 본 적이 있던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일본인의 남다른 기록욕은 다테마에로 인한 건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억압을 문자로 해소하는. 기록의 부재를 말하는 우린 그러고 보면 말로 다 푼다. 말이 가지는 휘발성, 가변성. 이게 우리 열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거론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코리안타임은 없다. 약속시간은 약속장소로 향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핸드폰 덕에 말의 공간적 한계가 극복되고 동시성이 확보되자 말의 즉흥성은 이제 소통의 역동성이 된다. '냄비근성'과 '빨리빨리'는 이제 인터넷의 스피드와 열정이 되었고. 그게 그렇다.
그리스인들을 그리스인들로 만드는 건, 돈이 아니라 기억이다. 기준이 되어 본 기억. 그게 무려 3천 년 전 기억인데 말이다. 20세기 내내, 우린 우리 기질과 특성을 스스로 비하하고 주눅 들어 왔다. 한류에 대해 신나하고 과장하거나 아니면 오로지 돈을 버네, 못 버네 하는 수위의 논의밖에 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기준이 되어 본 기억이 없다. 한류는 드라마나 배우가 아니다. 한류는 사람들이 우리를 모방하고 싶어 한다는 소리다. 우리가 멋지다는 말이다. 따라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그리스를 흉내 내고 싶었던 것처럼. 이걸 경제적 교환가치로밖에 따질 줄 모르는 건 정말 한심한 일이다. 상품이 아니라 기준이 될 일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제발 돈 이야기 좀 그만하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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